한국일보

[여성의 창] 하양, 색 중의 색

2017-06-10 (토) 12:00:00 장은주(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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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장미꽃들이 일제히 피었다가 지고 새 봉오리를 맺고 있는 동안에 매년 피어나던 하얀 샤스타데이지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나는 흰색 꽃들이 늘 꽃밭에 피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흰색이 함께 해야만 다른 색의 꽃들이 더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얀 장미꽃 대신 피어준 데이지 꽃들이 반갑기 만하다. 고운 색의 꽃들이 많지만 왠지 어두워 보이던 꽃밭이 살며시 밝아지고 있다. 하얀 데이지 꽃들의 덕분이다.

하얀 색은 항상 존재의 뒤에서 그를 받쳐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얀 도화지, 하얀 캔버스에 익숙해 있는 탓일까? 실재이면서 실재가 아닌 듯한 그 느낌...

문득 몇 년 전 그렸던 하얀 그림이 생각났다, 그 당시 가까운 분의 죽음을 경험하고, 나는 캔버스를 무작정 하얗게 덮고 있었다.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분을 보내야 할 수밖에 없는 체념, 포기 그리고 삶과 죽음의 운명에 대한 회한 그 때문이었을까?


그런 것들이 사람들에게 하얀 색을 선택하게 하는 것 같다. 19세기 말 인상주의의 선구자이자 개척자인 끌로드 모네(프랑스;1840-1926)는 임종을 맞은 그의 아내 카미유의 모습을 베일과 같은 햐얀 천으로 덮힌 모습으로 그렸다. 32세의 짧은 삶 속에서 그녀는 모네의 연인이었고 아내였으며 모델이었다. 그런 까미유는 극심한 생활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병들어 천재화가의 성공을 뒤로 한 채 모네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모네가 가장 사랑하던 모델이기도 했던 아내를 그는 56점의 작품 속에 남겼고 임종을 맞는 그녀의 모습을 마지막 초상화로 남겼다.

아마 모네는 눈물이 앞을 가려 아내의 영원히 떠나가는 모습을 제대로 그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떠나가는 사랑을 화폭에 담아 영원히 남겼던 것이다. 하얀 색의 성격은 영원이다. 무구하고 아득한 영원....

스펙트럼 상에서 분해되어 나타나는 7개의 무지개 색을 다 혼합하면 백색광이 된다. 순수하고 정결한 흰색은 오히려 모든 것을 다 덮고 있다. 모든 색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하양은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감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흰색은 너그럽다. 흰색은 극한의 심리 상태를 나타내기도 하면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완전한 감정의 포기이다. 그러면서 거기에 머물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제공하며 우리로 떠나가게 한다. 저 피안의 세계로....

<장은주(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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