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생일의 의미

2017-06-06 (화) 12:00:00 정고운(패션디자이너)
크게 작게
올해 첫째 아이가 두 번째 생일을 맞았다. 돌잔치를 하긴 했지만 생일이란 개념이 없던 아이는 생일잔치 내내 플레이 데이트 정도인 줄 알고 신나게 뛰어다니고 놀았다. 드디어 케이크에 촛불을 끌 시간. 케이크가 앞에 놓였다. 촛불을 켜고 사람들이 아이를 향해 환호하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제야 아이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모이고, 쌓여있는 선물들이 모두 그녀의 것임을 인지했다. ‘나에게 이런 날이 있는 거야?’라는 놀란 표정의 두 살 아이. 그리고 아이의 커다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순수하고, 진정한 감동의 눈물이었다.

나의 대학교 2학년 때 생일이었다. 심각하게 쿨병에 걸렸었다. 생일이라 말하는 게 엎드려 절 받는 거란 생각에 내심 축하받고 싶었지만 주변에 말하지 않았다. 하루가 수업, 과제로 끝나갈 무렵 우울함이 밀려왔다. 아 친구들 아무도 내 생일은 알아주지 않는구나. 11시 55분쯤 핸드폰이 울렸다. 집 앞으로 나오라는 문자가 왔다. 친구들이 케이크와 선물을 사와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모른 척하며 계획을 한 건지, 나중에 급하게 뛰어온 건지 중요하지 않았다. 가족 아닌 누군가 생일을 축하해 준다는 것이 고맙고 신났다.

삼십 대가되자 생일에 대한 기대감이 거의 없어졌다. 남편이 사온 케이크에 초를 불고, 가족, 친구들의 문자, 전화면 충분히 기쁘고 감사했다. 하지만 내가 존재할 수 있게 해준 중요 날임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축하의 메세지들은 언제나 기분을 좋게 한다.

요즘은 SNS에서 지인들의 잊고 있던 생일을 알려준다. 생일 축하를 잊지 않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의미 없이 기계적으로 남긴 한 줄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한 줄의 작성도 시간을 내어야 하는 것이고, 생일인 사람을 잠시나마 생각해야 쓰는 것이다. 더 이상 잘 하지 않는 SNS지만 지인들의 창에 축하말을 남기고자 노력한다. 한 줄의 축하지만, 그동안 그들과 바쁜 생활로 끊겼던 관계를 조금이나마 어색하지 않게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날이 생일이다. 오늘도 생일이 고맙게도 오래간만에 한마디 건넬 수 있게 해준다. “생일 정말 축하해. 잘 지내지?”

<정고운(패션디자이너)>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