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족사진

2017-05-27 (토) 폴 손 /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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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어느 한인의 변호사를 선정해주고자 통역을 한 적이 있었다. 한 변호사는 가족사진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위자료 계산은 6차원의 계산이라며, 단란한 가정을 깨뜨린 상대방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 가족사진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상대방의 보험회사나 변호사, 또한 법정으로 갈 경우 판사에게 얼마나 단란한 가정이 교통사고로 인해 깨졌는지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행복한 미소를 짓는 가족들의 사진들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느 갑부들은 여행 다닐 때 부부가 다른 비행기를 탄다고 한다. 한 비행기에 무슨 변이 생겨도 다른 배우자는 생존할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즉, 재물을 지키겠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손주들이 태어나면서 소원이 하나 생겼다. 가족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모두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마다 직장에 다니므로 좀처럼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비용은 이 할아버지가 모두 담당하겠다고 해도, 시간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2년 전 카보로 가기로 합의를 보고, 아들이 모든 절차를 담당하기로 했다. 항공권을 구하고, 리조트에 방을 예약하고, 이런 저런 가족행사를 계획했으니 꿈이 현실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허리케인이 카보를 강타해 그곳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예약한 방은 폐허가 되었으니 환불을 받았고, 항공사도 환불을 해줘서 금전적 손해는 없었으나, 어쩌면 단 한번이었을지도 모를 가족여행의 기회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인생에서 예기치 못한 일들을 많이 당하지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경험에 의하면 항상 이기는 삶은 없다. 그래서 1/3만 잘되면 성공이라고 믿는다. 이는 야구선수들이 열번 타석에 나가서 세번만 안타를 치면 성공한 선수가 되는 확률에 기인한 것이다.

조실부모한 탓에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은 얼마 남아있지도 않고, 조부모의 사진도 없다. 부모님들은 얼마나 단란한 가정에서 사셨을까?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어, 빛바랜 사진 대신 항상 신선한 모습을 모니터에서 볼 수 있으니 이것이 시대의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다 올 초, 아들에게서 5월에 하와이로 갈수가 있느냐고 전화가 왔다. 두번째 꾸는 꿈이랄까? 그런데 딸은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반쪽짜리 가족여행이지만 그나마 전혀 못가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우리 부부는 좋다고 했다. 마침 그 주간에 미국의 유명한 결혼사진 작가가 오하우에 머문다는 소식을 접한 아들은 그에게 가족사진을 부탁하겠다고 했다.

지성이면 감천인가? 결국 딸도 갈 수가 있게 되었다. 할아버지부터 손주들까지 모두 한 비행기에 타니 두렵기도 했었다. 지난 어머니날 아들이 예약한 곳에서 브런치를 하는데, 나도 이런 곳에 어머님을 모시고 올 수 있었으면 싶었다.

가족 모두가 웃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지정된 곳에서 가족사진을 찍으며 어쩌면 다시는 없을 이 기회를 만끽하는 동안, 이 세상에서 살다 떠나면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폴 손 /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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