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문득

2017-05-19 (금) 12:00:00 정조은(KCCEB 코디네이터)
크게 작게
운동하러 바닷가 트레일에 나갔다가 문득 베이 지역에 산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행복이란 것을 느꼈다. 마음만 먹으면 내가 좋아하는 바다를 볼 수 있다니. 등산을 즐기는 편인데, 멀리 가지 않아도 경치가 좋은 등산로들이 널려 있다. 또 각기 다른 곳에서 정착한 사람들이 모여 어느 나라의 음식이든 즐길 수 있다. 식탐이 많은 나에게는 최고다.

지인은 베이 지역에서 떨어진 곳으로 이사하고 싶다고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샌프란시스코 주변은 문화가 너무 직장생활과 경력을 쌓는 것에 치중되어 있어 거리를 두고 싶다고 하였는데,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생각해오다 이제 곧 뉴욕으로 이사한다는 또 다른 지인은 무척 설레 보였다. 가서 잘 지내라며 인사를 해주고 ‘나는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까?’ ‘가고 싶은가?’ 생각해보았다. 이사는 몰라도 갑자기 어디론가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었다.

얼마 전 친구가 거의 일 년 동안 러시아, 몽골, 중국, 캄보디아, 네팔, 인도 등 많은 나라를 여행하다 돌아왔다. 많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해주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몰디브란다. 몰디브란 신혼여행으로 많이 간다는 그 이쁜 곳이 아닌가? 친구가 찍어온 많은 사진을 보여줬는데, 그 멋있는 바닷가 사진들은 빠르게 지나치고 몰디브가 기억에 남는 이유라며 그곳에서 만난 한 중년 남성의 사진에 멈추었다.


그는 필리핀에서 프로 농구 선수로 살다가 부상으로 일을 못 하게 되었고, 가족과의 관계도 어려워지며 우울증을 겪었다고 한다. 수영은 못하지만 바다가 좋다는 그는 또 다른 섬나라에서 일자리를 찾다 몰디브에서 게스트하우스의 매니저가 되었다. 친구는 그가 발산하는 긍정과 인생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에 감동했단다. 또 인상 깊었던 사람은 미국에서 온 70대의 할머니. 그녀는 몽골의 호스텔에서 만났는데 묵직한 노트북으로 카드게임을 하고 어린 투숙객들과 한잔하며 어울렸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기억도 서서히 사라지더라며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기라고 친구에게 충고해주었다. 그날부터 친구는 여행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친구를 통해 여행의 즐거움을 맛보다가 문득 강렬한 부러움에 나도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정조은(KCCEB 코디네이터)>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