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울 할매

2017-05-18 (목) 12:00:00 그레이스 홍(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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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를 만큼 할머니를 따랐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수업 받는 동안 할머니께서는 나무 밑이나 꽃밭 언저리에 앉아서 수업이 끝나기를 항상 기다리셨다.

너무 더운 날은 더위 먹는다고 유치원에 안가고, 비가 오면 감기 든다고 안가고, 추우면 춥다고 결석했다. 할머니께서 마땅히 기다리실 공간이 없어서 결석이 잦아졌다. 불교 신자인 할머니께서는 교회 부속 유치원에 내가 다니는 것 자체가 썩 탐탁치 않으셨고, 교회 건물 안에 발을 들여놓는 걸 꺼리셔서 항상 유치원 마당에서 기다리셨다.

그렇게 흐지부지 다니다가 유치원을 중퇴해버렸다. 눈앞에 내가 있어야만 안심하시는 할머니의 사랑 방식을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초등학교 때 태풍으로 물난리가 났었다. 강이 범람하여 모든 도로가 물에 잠기고, 애들이 하천가에서 용트림하며 세차게 구비치는 물 구경을 하다가 휩쓸려 실종이 되기도 했다.


그 난리통에 아침이 되자 내가 굳이 학교에 가겠다고 나섰다. 도로 침수로 택시도 다닐 수 없는 상황인지라 할머니께서 큰 트럭을 불러서 나를 학교로 보내셨다.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어린 내 눈엔 철옹성 같아 보였던 교문은 태풍으로 반쪽만 덜렁대고 있었고, 인기척 없는 넓은 학교는 꿈을 꾸는 듯 다른 행성에 내려앉은 느낌이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티비에서 홍수 장면을 보면 그날의 운동장에 가득차 있던 흙탕물이 오버랩된다. 멋쩍게 집에 돌아오니 대청마루 끝에 나란히 앉아서 비 구경하던 삼촌들이 놀려댔다. “혼자 트럭 타니 좋았냐?” 그후로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한 행동을 했을 때 우리 집에서만 통하는 말이 ‘트럭 타고 학교 가기’이다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내가 슬픔의 늪에 빠졌을 때,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을 때, 따뜻한 기운으로 다가와 항상 나를 감싸며 일으켜 세웠다.

내가 엄마에서 할머니로 되는 순간, 끊임없이 샘솟던 사랑의 수수께끼가 자연스럽게 풀렸다. 손녀의 얼굴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의 심장이 뛸 때마다 가슴에서 사랑이 넘쳐 흘러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삶에 대해 초연해진 줄 알았는데 더 건강하고 더 열심히 살아서 손녀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픈 욕심이 생겨났다. 손녀로 인한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나를 보며 다시금 할머니 생각에 젖어 든다.

<그레이스 홍(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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