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한다. 그 후 미국의 문화적 주권은 70년대까지 지속되며 오늘날까지 문화선진국의 면을 건실하게 유지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미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미국적인 것을 보여주는 한편, 유럽의 미술을 배우는 데도 열심이었다. 그들이 미국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떠나 최초로 국제적인 미술 양식을 이뤄낸 것이 바로 추상표현주의다. 추상표현주의 양식은 큐비즘과 초현실주의의 영향으로 만들어졌지만 유럽의 것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미국적 속성이 있다.
추상표현주의 미술가들은 잭슨 폴락이나 윌렘 드 쿠닝 같은 액션 페인팅 작가들이 있는 반면, 색면을 주로 그렸던 진 데이비스 외에 토마스 다우닝, 샘 길리엄, 폴 리드, 알마 토마스, 하워드 메링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각자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가 내면의 침잠이지 사회적 주제나 주변세계를 살피는 것이 아니었다.
1950년대는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시발점이다.
5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중반까지 워싱턴 DC에 기반을 두었던 색면화가들 중 오늘날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는 이들이 많다. 그 중 한 사람이 진 데이비스(1920-85)다. 일명 워싱턴 색채파라 불리는 이름은 1962년 진 데이비스를 비롯해 모리스 루이스, 케네스 놀랜드 등이 참가한 전시회서 명칭이 굳어졌고, 따라서 이들의 회화 경향을 칭한다. 이들은 워싱턴에 거주한다는 점과 대부분이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동일성을 지녔을 뿐 스타일과 취향은 다양했다.
그러나 이들 작품의 본질은 기하학적이며 하드엣지의 범주에 드는 것이었다. 반복되는 패턴을 통해 색채의 시각적 효과를 강조했던 것이다. 이들은 아크릴 물감의 투명성과 반투명성의 효과가 작품을 훨씬 로맨틱하고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이용했다. 3차원 공간감이 주는 착시 효과를 거부하고 2차원 평면으로 바라보며 물감을 넓게 펴 발랐다. 색채로 덮힌 캔버스는 안료와 함께 일체화 되어 캔버스는 거대해지고 순수한 색과 면의 추상이 주는 새로운 효과를 보인다.
미국 추상표현주의자들의 엄청난 스케일의 그림은 60, 70년대로 가면서 변화를 가졌다. 그들의 작품은 최대한 꾸밈과 형태를 제거, 본질적 요소를 표현 탐구하는 미니멀리즘의 특징을 나타냈다. 기하학적 추상과 구별되는 미니멀리즘은 음악에도 영향을 주었고, 한국에서는 동양적 정서와 결합하여 단색화라는 새로운 유파를 낳았다.
워싱턴은 미국내 역동적인 문화도시 중 한 곳이다.
1960년대 색면 화가들의 ‘로컬 컬러’ 작업이 태동한 이곳에서 진 데이비스가 표현하고자 했던 스타일, 테크닉, 추상성을 살피는 일은 흥미롭다. 단순한 형태의 반복과 세로줄 무늬로 표현된 그의 작품 15점이 4월 2일까지 전시되고 관련된 각종 이벤트도 진행되고 있다.
시대와 사회 그리고 계급의 저류를 흐르는 정서는 자연과 인물 등을 통해 표현 되면서 미술 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나라와 지방에 따라 특색 있는 문화가 형성된다. 당시 워싱턴의 미술 사조는 색의 향연이었다.
색은 빛이다. 그 속에는 무한한 이미지가 존재한다. 치유의 힘과 함께.
우리는 사물에서 색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생겨난 분위기를 느낀다.
미술 작품은 오브제 자체보다 어떻게 보느냐 하는 정조(情調)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느냐 이며 나아가 그 작품이 인생과 사회와 시대의 문화에 어떤 가치를 주느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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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정 숙
뉴욕, 서울, 워싱턴, 파리에서 30여회의 개인전을 가짐. 세계 각지에서 국제 아트 페어와 200여 회의 그룹전 참가. KBS, 월간 미술경제지 ART PRICE, 월간 대전예술에 미술 칼럼 기고 중. 저서로 <그리고,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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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숙 <화가·미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