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의 메아리

2016-05-21 (토) 07:03:35 김은주 뉴욕시 공립교 과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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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연애의 그 절절한 환희에 깊숙히 빠져 꿈속을 헤매고 있음을 고백하고 싶다. 나에겐 뉴욕의 스카이라인의 그늘 밑에 핀 한 송이의 봉숭아처람 정겨운 나의 학교 오전 수업을 마칠 무렵이면 나의 휴대 전화에 메시지가 뜬다.

"엄마, 점심 맛나게 드세용." "한내 사랑해. 그래, 한내두…" 난 이렇게 나의 딸들과 사랑의 메시지 교환에 푸욱 빠졌다.

처음엔 영어로 문자를 주고받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한글 문자가 50퍼센트, 영어가 50퍼센트 혼용의 메시지가 날라 왔다. 그리곤 이윽고 전체의 거의 100퍼센트를 한글로만 문자를 보내는 나의 딸들이 너무나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고, 그리고 정말 예쁘다.
말이란, 아니 언어란, 그리고 문자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익혀, 쓰고 포현하고 또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그것이 무척 자연스러운 언어 발육의 한 과정인 것이다.

언어학자들도 이런 자연스러운 언어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의 말은 바로 내 마음이고 내 심장이고 내 영혼이고, 내 존재이고 또 그 존재의 가치와 기준이 아닌가! 바로 이 때문에 언어는 함부로 오염시켜서도 안 되고 또 오염되어서도 안 된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말을 처음 가르쳐 줄 때 꼭 알아들으리라는 기대 없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되었다. "우리 한솔이 예뻐요. 우리 한내 사랑해요! 아휴..예쁜 한내 엄마 뽀뽀..." 하면서 귀에 익히게, 소리를 내어 말해주었다. 물론 습관적으로 영어로도 말해 줬지만 우리말도 속삭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말로 말해줄 때 한결 더 정겹고 나의 마음 저 깊숙한 심연에서 나오는 사랑의 속삭임처럼 실감이 났다.


언어란, 특히 모국어란 그런 것이다. 사랑의 속삭임, "사랑해!"와 "I love you!" 는 느낌이 천지 차이다. "사랑해" 라고 속삭일 때는 입이 활짝 열리고 속에 있는 뜨거운 애정의 열기가 전달된다. 하지만 "I love you" 는 그냥 입 반만 열고 내뱉어도 말 할 수 있다.

"사랑해!" 와 "I love you." 의 차이는 목에서 나오는 발음인 지, 아주 깊은 가슴 속 심연에서 나오는 발음인 지 비교가 된다. 성악 공부를 할 때도, 선생님이 목에서 삐약 삐약 소리 내지 말고 저 깊은 뱃속에서 발성을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우리 모국어로 말을 할 때는 마치 저 깊고 드넓은 우주의 외딴 초원에 핀 들국화들의 바람결에 스쳐 지나가는 사랑의 속삭임, 아니 보다 더 오묘하고 비밀스러운 사랑의 메아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할 수 있겠다.

요즘 고국에서는 물론 미주의 한인 이민사회에서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심지어는 제3국의 언어를 혼용한 언어의 오염이 위험수위에 이르도록 심화되고 있는 현상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는 주류 언론에서까지 외국어 사용을 지적우위의 과시를 위한 수단으로 애용하고 있어 모국어의 원형이 훼손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언어의 오염은 바로 정신의 혼돈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아름다운 전통과 고유한 역사, 그리고 문화가 가진 그 특성이 왜곡되고 질식될 때, 한민족의 정체, 그 자체가 크게 변질되는 위험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

아! 또 기대된다. 점심시간에 올 '사랑의 메아리. 이번엔 무슨 내용의 글이 날아올까? "엄마, 오늘 김밥 먹었어요. 엄마, 체육시간 때 넘 뛰어서 땀이 뻘뻘...엄마, 사랑해! 힘내세요! 엄마! 최고!" 이런 사랑의 메아리가 날아 올 것 같다. 아, 점심시간 때 배가 고픈 게 아니라, 한글로 날아오는 사랑의 메아리가 고프다. 빨리 "먹고" 싶다!

난 요새 깊은 사랑에 빠졌다. 연애를 아주 찐하게 한다. 나의 예쁜 딸들과...

<김은주 뉴욕시 공립교 과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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