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쓰러뜨렸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호하며 그의 위업을 칭송했다. 여기서 불길한 예감은 드디어 현실로 다가 온다.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질투하고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불길한 징조는 무명의 연주자였던 다윗이 사울의 심한 우울증 치료를 위해 사울의 집으로 불려 갈 때부터 시작된다.
섬뜩함마저 감도는 사울의 우울증은, 그가 언젠가는 자기가 불러들인 다윗에 대해 피해망상을 가지게 되리라는 암울한 복선을 제시한다. 질투심으로 가득한 사울의 마음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사울이 다윗을 해하려 할때마다 상황은 다윗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만다. 사울은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다. 왕권, 가족, 친구, 부하까지.” (데이비드 울프의 ‘다윗’ 중에서)
하루는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라는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사울은 분노하여 말한다. “왜 저들이 나에게 만만을 돌리고 다윗에게 천천을 돌리지 않는가.” 사울이 백성들의 유행가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분노한 것은 그의 인격이 시기심과 질투심으로 가득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암시한다.
질투심은 인간의 마음을 급속히 황폐화시킨다. 황폐화된 사울의 마음에 악신이 자주 임재하여 영적으로 괴롭혔다. 질투심이 가득한 사울은 아무도 믿지 못한다. 그 결과 남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욕구를 갖게 된다.
그 지배욕구가 상처를 입을 때 분노와 살인을 저지르는 바보가 된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백주에 살인한 것도, 에서가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20년 이상 추적한 것도 상처 입은 지배욕구 때문이다. 더 나아가 모르드개, 에스더와 유다 백성을 몰살하려고 계획한 하만의 정치적 행위도 알고 보면 지배 욕구에 극심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인격은 삶의 승리를 가늠하는 나침반이다. 인격에는 품격이 있다. 내 마음에 누구를 향한 시기심이나 질투심이 숨어있으면 숨어있는 씨앗의 종류 그대로 인생의 열매를 맺는다. 타자와 교차하며 마주칠 때의 나의 인격의 실상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라.
바로 여기에서 다윗의 점점 상승하는 삶과 사울의 점점 기울어지는 삶의 선명한 대조를 본다.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의 제물을 드리기 위해 농부 가인은 들에서 굵은 땀을 흘려가며 거둔 곡식을 올려놓았다. 반면 목동이었던 아벨은 자연의 산비탈을 누비면서 한적하게 양을 치다가 그 중에 양 한 마리를 성별(聖別)하여 하나님께 드렸다. 누가 봐도 가인이 아벨보다 더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선호했고 가인의 제사는 거부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가인의 마음속에 질투심과 지배욕구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질투심에 지배욕구라는 바이러스가 침입하자 순간 가인은 이성을 잃었다. 가인은 전광석화처럼 달려가 돌을 들어 형제 아벨을 살인했다.
그리고 이 바보짓은 지금도 세계도처에서 계속되고 있으며 인류를 속이고 있다. 성경은 말한다.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당신은 리더인가. 인생에 한 번은 인격의 고수이신 예수를 만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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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