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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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주 선교사의 VA 선교사 이야기 4

2015-11-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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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는 나의 피난처, 선교사 유화례

버지니아 주 해리슨버그에는 아주 특별한 선교사의 무덤이 있다.
원래 그는 버지니아 출신도 아니고 그가 버지니아와 인연을 맺었던 것은 1925년도에 리치몬드에 있는 장로교 선교훈련 학교에서 2년을 수학한 것이 전부였다. 그가 1978년까지 51년간에 걸친 사역을 마치고 은퇴하면서 정착한 곳이 해리슨버그였다. 이곳에는 장로교에서 운영하는 목회자, 선교사 은퇴수양관이 있다. 늘 입버릇처럼 광주에 묻히고 싶다던 생전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1995년 102살의 나이로 소천할 때까지 17년간 버지니아 한인교회들의 초청을 받아 여러 곳에서 설교를 했다.
우리나라에 왔던 2,000명의 선교사들이 힘든 조선에서 온갖 질병으로 죽게 되었다. 소래에 와 있던 캐나다 선교사 맥켄지는 장질부사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냥총으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중국에 와 있던 그의 약혼녀가 자청해서 조선으로 옮겨 그가 이루지 못한 선교사의 삶을 이어갔다.
태평양 전쟁 시에도 일본의 구금을 견디어 내더니 ‘고통 받는 한국인들을 내버려 두고 그냥 갈 수 없다’며 육이오 전란 때 출국을 거부하고 남았던 단 한명의 선교사가 있었다. 뉴욕 출신인 유화례 선교사였다. 그의 본명은 플로렌스 루트(Florence Root)다. 육이오 전란을 맞이할 때 그의 나이가 쉰일곱이다. 적당히 눈감고 못이기는 체 미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건만 공산군이 광주로 진입하기까지의 한 달 동안 교통이 끊긴 처지라 선교부 트럭을 이용하여 피난을 도왔다. 부산으로 실어다 주고 광주의 고아들을 해남과 목포 등지로 숨겨주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숨을 곳이 없었다. 정작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았던 참담함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전란 중에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건만 도망치기가 쉽지 않던 그에게 구원의 손실이 다가왔다. 화순과 광주에 기독교 신앙공동체를 이끌고 있던 동광원 사람들이었다. 지도자 이현필, 정인세를 중심으로 하여 집단으로 농활을 이루고 살던 이들이 유화례라는 벽안의 선교사가 자진하여 광주에 남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살려야겠다고 나선 것이다. 바작이라는 지게에 그를 들어 올리고 힘센 장정 서너 명이 화순 도암면에 있는 그들 도반의 아지트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한 여름 무더위에 이불을 덮어 쓰고 비 오듯 흘리는 땀도 닦아내지 못하고 만 스물 네 시간을 화순의 화학산에 이르렀다. 공산군의 검문과 눈길을 피하느라 결코 쉽지 않았을 피난 길, 화학산 문바위 인근의 동굴에서 인민군들과 쫓고 쫓기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그녀가 공산군들이 물러 간 76일 동안 산에서 체험한 이야기는 소설로 풀어쓰기에도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이 무렵 그녀가 졸업한 스미스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 장로교 선교부를 중심으로 유화례의 무사귀환을 기도하는 촛불 행진이 이어졌다.
전쟁이 끝나고 유화례는 악몽같이 보낸 여름밤의 화학산을 ‘하나님의 별장’이라고 썼다. 그녀를 생포하기 위해 다섯 군에서 몰려온 인민군들의 작전 중에 그를 살리려는 피나는 노력이 더해졌다. 이 과정에서 다섯 명의 순교자도 생겨났다. 의인이 의인을 알아본다. 한국인들을 목숨처럼 여기며 섬김의 삶을 산 유화례 선교사의 사람됨을 알고 있는 동광원 사람들의 순교 작전은 누구에게도 알려진 바가 없다. 아무런 대가없이 흘려진 피의 값어치는 하늘에서 보상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1958년 6월, 유화례는 코리 텐 붐을 광주로 초청한다. 코리는 나치 독일 치하에서 네덜란드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을 자기 집 다락에 숨겨주었다가 아버지와 언니와 함께 독일 수용소로 끌려갔다. 온갖 고문과 온몸을 발가벗긴 수모 속에서 아버지와 언니가 죽었다. 코리는 피를 말리는 고문 와중에 행정 실수로 풀려 나왔다. 그녀 집안의 선행이 알려졌고 그는 전쟁 후 세계를 돌며 간증으로 이를 알렸다. 그녀가 쓴 책이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1958년에 코리와 유화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고난 속에서 주님의 사람을 끝까지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선하신 인도를 함께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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