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자식들을 매우 자랑스러워 하셨다. 지금부터 벌써 이삼십년이 지난 일이다. 당시 자식들이 다 대학을 다니고 있어서 사람들이 물어보지 않아도 우리 애들이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말씀하시고 다니셨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들이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 신문에 춘천 연극제를 한다는 광고가 났다. 엄마는 "야 우리 좋은 추억하나 만들어보자! 엄마가 대학생들인 너희랑 연극 한번 보자"고 하셨다.
엄마는 마치 우리가 학교축제나 행사가 있으면 당연히 본인도 가봐야 하는 걸로 알고 계셨다.
엄마는 한쪽엔 동생과 한쪽에는 나를 손잡고 다니고 싶어하셨다. 우리는 청량리로 갔다. 아침 10시쯤 도착했는데 동생과 내가 함께 춘천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낮 2시42분 ‘기차였다. 시간이 네 시간 넘게 남았다. 엄마가 청량리 온김에 맘모스 백화점을 가자고 하셨다. 엄마는 우리들과 함께 거니는 게 무척 즐거우셨던 것 같다.
나에겐 원피스를 사주셨고 동생에겐 바지를 사주셨다. 근사한 느낌으로, 그리고 오랫만에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를 역전 근처 레스토랑에서 먹으니.
낮 2시 42분에 딱 맞게 청량리 역으로 왔다.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름 바쁘다고 동생과 우리 셋이 모이기도 힘들었는데 쇼핑도 하고 세련된 점심도 먹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근데 아뿔사 이게 뭔일인가! 기차가 출발하고 만 것이다.
우리는 긴급하게 역전 안내하는 곳에 찾아갔다. 우리는 철도 공무원들이 이렇게 실수할 리가 없는데 라고 생각하며 서둘렀다. 그런데 웬걸. 엄마의 자랑스러운 자식들 둘이 모두 다 그 쉬운 숫자를 잘못 읽어서 2시 42분이 아니라 2호차 객석 42였다 그리고 시간은 2시 40분이었다.
2분 전에 기차는 떠났다. 그리고 퍼부어지는 엄마의 독설 "대학생이 돼가지고 그깐 차표도 못 읽냐!!!..." 집으로 셋이 각각 멀찌감치 떨어져 왔다. 그때는 춘천가는 기차가 하루에 두번정도? 운행을 할 때였다… 정적만이 남아있네.
추억이란 뭘까? 춘천에 가서 연극을 보고왔으면 더 멋진 추억이 되었을까? 아닌 것 같다. 뭔가 계획엔 어긋나고 그 순간에 당황했어도 두고두고 미소짓게 하는 것이 추억 아닐까? 참 우리는 추억부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