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 감독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말 두 마디를 남겼다. “전작은 저의 적이죠”와 “헤밍웨이가 그랬어요. ‘네가 좋아하는 것을 버려라’라고요”다. 최동훈 영화의 감각적인 대사가 어디서 왔는지를 느낌과 동시에 그의 신작 ‘암살’이 어떤 영화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그러니까 ‘암살’은 그의 전작들(‘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도둑들’)에 맞서 그의 스타일과 장기를 버리고 상대해서 얻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를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대체로 성공적이지만 부분적으로 실망스럽다. 흥미로운 건 이 성공과 실망이 같은 곳에서 나왔다는 것. ‘암살’의 성공은 최동훈 감독이 스타일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덜어내고 얻은 ‘클래식함’이라면, ‘암살’의 부분적 실패는 그가 스타일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잃었기 때문에 닥쳐온‘매력 감소’다. 그렇다면 성공과 실패의 득실 마진은 어떻게 될까.
- - - - -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친일파와 일본군 수뇌부를 제거하기 위해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을 필두로 암살단을 조직한다. 일본군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독립군 스나이퍼 안옥윤(전지현), 신흥무관학교 출신 총기 전문가 속사포(조진웅),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이다. 세 사람은 작전 수행을 위해 함께 경성을 향한다. 그 사이 알 수 없는 존재에게 암살단을 살해해 달라는 사주를 받은 청부살인업자 하와이피스톨(하정우)과 포마드(오달수)도 경성으로 간다.
‘암살’은 최동훈 감독의 전작들과 기본틀이 같다. ‘작당’(作黨)해서 ‘모의’(謀議) 한 뒤 ‘수행’(遂行)하고 ‘작별’(作別)한다. 이는 최동훈 감독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많이 해본 솜씨답게 영화에서 돋보이는 건 역시 서사를 장악한 자신감이다. 임시정부와 암살단 그리고 내부의 적, 친일파와 일본군 수뇌부, 청부살인업자까지. 여기에 출생의 비밀까지 얽혀 있는 복잡한 이야기를 최동훈 감독은 매끈하게 이어붙인다. ‘암살’은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인물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최동훈 감독 특유의 캐릭터 조형술도 좋다. 이 조형술은 짝을 이루는 캐릭터의 조합에 힘을 빌린다. 독립군 안옥윤과 일본 이름을 가진 한 인물(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인물), 대의를 말하는 황덕삼과 보상을 바라는 속사포, 자신의 삶을 경멸해 권력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염석진과 똑같이 자신의 삶을 경멸하지만 변두리 삶을 사는 하와이피스톨, 일본 편에 선 사업가 강인국(이경영)과 임시정부의 편에 선 아네모네의 마담(김해숙)이 그 짝이다. 최동훈 감독은 이 보색대비를 통해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색을 더 두드러지게 만들어내는 정교함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뛰어난 요소들이 전작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느려진 이야기 전개 속도와 한 박자 늦춘 편집, 덜 감각적인 대사 위에서 보여진다는 점이다. 최동훈 감독의 이 변화는 관객을 ‘암살’이라는 기차 위에 완전히 태우지 못한다. 상대적으로 몰입감이 떨어진다는 것. 극의 속도감은 최동훈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고, 관객은 그의 스타일을 사랑해 마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관객은 최 감독의 이번 영화에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아쉬운 건 액션이다. ‘암살’은 정서와 분위기, 시대적 메시지가 더 중요한 영화라는 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암살’의 액션은 너무 평범하다.
출연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다. 전지현은 점점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고, 이정재는 몇몇 장면에서 뛰어난 집중력을 보여준다. 조진웅, 최덕문, 이경영, 김해숙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그래도 가장 좋은 건 하정우와 오달수의 콤비 플레이다. 두 뛰어난 배우는 대사와 몸의 리듬을 안다. 하정우는 자유와 낭만, 장난기 속에 위엄을 담는다. 오달수는 코믹함 속에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암살’은 흥행과 무관하게 관객으로부터 상반된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한쪽은 ‘역시 최동훈’이라며 다시 한 번 최동훈 감독을 추어올릴 것이고, 다른 한쪽은 ‘최동훈에게 실망했다’며 영화를 ‘까댈’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확고하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상업과 오락과 흥행이라는 부분에서 누구 못지않은 높은 탑을 쌓은 창작자의 변화, 그것은 그것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다. ‘암살’을 보니, 고여있지 않은 최동훈이 흘러가 도착할 다음 장소가 어디인지 더 궁금해진다.
<손정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