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제’란 이름으로…

2014-12-30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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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에 천금(千金)의 아들은 저자에서 죽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빈말이 아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화식(貨殖)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또 이렇게 이어진다.

“공자의 70여 제자 중 이재에 밝고 가장 부유한 제자가 자공이다. 그자공이 사두마차를 타고 선물꾸러미를 꾸려가지고 다닌다. 그러면 찾아가는 나라의 왕들은 몸소 뜰로 내려와 대등한 예를 행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돈이 말한다. 돈이면 안되는 일이 없다. 고금의 진리인 모양이다. 거기서 굴절되어 나온 말이 유전무죄다. 돈만 있으면 죄를 짓고도 법망에 걸리지 않는다. 이 역시 진리로 통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오늘날 세태다.

관련해 미국 언론이 만들어 낸 말이 있다. 대기업의 회장은 영어로 보통 chairman으로 불린다. chairman은 chairman이다. 그런데 그 앞에 wheel이란 단어를 붙였다. 그리고는 적지 않은 한국의 대기업 회장을 ‘휠체어맨’ (wheel-chairman)으로 표기한 것이다.

심신이 멀쩡하다. 아니, 스태미나가 넘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대기업 총수(chairman)가 불미스런 일로 법망에 걸려 구속된다. 그러면 그는 갑자기 휠체어에나 의지하는 ‘휠체어맨’ (wheel-chairman)이 되고 만다. 그래서 나온 말이다.

그 휠체어맨의 효시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다. 1997년 이른바 한보사태와 관련해 검찰에 소환되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이후 한국의 재벌총수가 비리와 관련해 검찰에 출두하거나 재판을 받게 되면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하는 것이 휠체어다. 그뿐이 아니다 아예 침대에 누운 모습으로 나타날 때도있다.

그 한 케이스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다. 지난해 재판 때 산소 호흡기를 하고 침대에 누운 채 재판을 받았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은 1960년생으로 한창 나이다. 그런 그가 법망을 피하기 어렵게 되자 돌연 ‘휠체어맨’이 됐다. 그러더니 급기야 중환자가 되어 버렸다.

법망에 걸리면 왜 멀쩡하던 그들은 중환자가 되는가. 이는 대한민국 사회의 불가사의다. 어쨌거나 ‘휠체어맨’ 재벌그룹 오너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중형을 피하거나 조기석방 되기 일쑤다.


구속 중인 재벌 총수들을 조기석방 해야 한다. 가석방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면조치를 해야 한다. 연말 한국의 정가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경제가 어렵다. 그러니 경제를 살리기위해 풀어주어야 한다는 거다.

신기한 일은 야당도 화답하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재벌총수라고 해서 가석방 혜택에 있어 역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의 이름으로 ‘휠체어맨 재벌 오너들을 감싸고 도는 정치권. 그 모습을 한국 사회의 민초들은 도대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이래저래 2014년 대한민국의 키워드는 ‘불통’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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