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는 갑질과 무관한가?

2014-12-2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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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만연 / 수필가·회계사

얼마 전 두 아줌마가 “분별력 없는 짓을 벌였다”고 국민의 질책을 받고 있다. 한 아줌마는 미국 시민권자로 한국에 나가 어떤 종북 아줌마와 토크 콘서트를 연다며 전국을 순회 중 한 고등학생으로부터 사제 화염병 세례를 받았다.

또 다른 아줌마는 재벌가의 공주로 미국에 와서 힘없는 부하 직원들에게 직권을 남용하다가 급기야 이륙하려던 비행기까지 되돌리는 막강한 권세를 발휘하였다.

한국이 여인천하가 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지만 이제는 국내외 가리지 않고 그 맹위를 떨쳐 필자 같은 간 큰 남자도 ‘인명재처’를 받아드려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두 아줌마가 지탄을 받는 이유는 시세 말로 ‘갑질’을 행사하였거나 옹호하였기 때문이다. ‘질’이란 바르지 못한 행동에 익숙해진 나쁜 버릇이라는 뜻으로 도둑질, 이간질처럼 주로 접속명사로 쓰이고 있다.

한국의 재벌 아줌마는 고용주와 종업원의 관계를 주종관계, 즉 주인과 하인으로 생각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북한 방문 재미동포 아줌마는 통치자와 인민의 관계를 군신관계, 곧 임금과 백성으로 여기며 이를 미화하는데 앞장섰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갑질’ 후자는 ‘갑질 옹호’에 해당한다.

인간사회에 갑과 을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기본적으로 모든 부문에서 둘 사이의 관계가 자유롭고 평등해야 하는 것을 국가의 존립기반으로 삼고 있다. 지금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는’ 세상인 것이다.

소위 ‘땅콩 회항’으로 알려진 사건의 주인공인 재벌가 딸은 비록 회사의 임원이라고는 하나 필자의 막내딸 보다 젊은 나이임을 감안하면 아직 인생 철부지에 불과하다. 이번 기회에 세상 무서운 것을 깨닫고 심기일전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몇 차례 방북한 것을 책으로 펴낸 재미동포 아줌마는 걱정스럽다. 만에 하나 ‘세뇌된 일꾼’이라면 쉽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말한 대로 북한인민도 우리와 똑같은 겨레임이 틀림없고, 굶주리는 그들을 도와주며 다방면으로 교류해야 한다는 것 또한 백번 지당한 생각이다. 하지만 북한의 체제를 은연 중 미화하고 국민의 판단을 호도하여 결과적으로 안보를 위태롭게 만드는 일과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김정은 추종세력이거나 정신 이상자가 아니라면 북한을 찬양하는 활동을 하고 다닐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들에게 “당신들은 수많은 탈북난민들을 보지도 못하느냐?” 고 물어보고 싶다.

차라리 국가의 이념이나 사상문제라면 그 믿음을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북한은 오래 전 그런 국가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다만 히틀러나 스탈린에 버금가는 한낱 독재자가 총칼로 인민들을 지배하는 폭압집단에 지나지 않음은 온 세계가 다 아는 일이다.

이 글을 마치면서 문득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나는 갑질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갑과 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처지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성탄절은 절대 ‘갑’이신 예수님이 인류를 구하기 위해 도리어 가장 낮은 ‘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는 혹시 알게 모르게 이웃에게 갑질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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