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이슬비 ㅣ 여유
2014-12-02 (화) 12:00:00
지난주에 있었던 영주권 인터뷰를 끝으로 드디어 미국 땅에서 합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2013년 약혼자 비자를 시작으로 거의 2년에 걸쳐 진행된 일이라 나에게는 큰 혹이 하나 떨어진 느낌이었다.
이민자들에게 골칫덩어리로 여겨지는 신분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나 변호사를 고용하지 않고 남편과 내가 스스로 해낸 일이라 더욱 기뻤다. 이곳에 와서 느낀 삶의 다른 점은 대부분의 것들이 천천히 흘러간다는 것이다.
정부기관과 관련된 일을 처리할 때도, 운전을 할 때도, 물건을 주문하고 기다릴 때도 모든 게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한국에서는 총알배송이라는 단어처럼 모든 게 빠르게 빨리 처리되는 것을 기대한다. 이런 빠름의 문화에 익숙해있던 나에게 기다림은 늘 답답함으로 느껴졌다. 미국 생활의 필수인 운전을 위해 DMV에 갔을 때 시험을 접수하는 데만 1시간, 시험을 보는 데까지는 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한국이었으면 냅다 달려가 담당 직원과 한 판 붙었을 텐데 단 한 사람도 불평하지 않고 자기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한 번은 아침 출근길에 교차로 신호등이 고장 났을 때에 사거리 모든 차들이 4 way stop으로 운전하였다. 1분 1초가 아까운 출근길에 누구 하나 먼저 가는 사람 없이 자기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 상황이었으면 분명 누군가는 길거리에 나와 소리를 지르고 싸워야 할 판이였는데 신기하게도 너무나 평온하였다.
내가 겪는 문화 차이일 수도 있지만 문득 모든 것을 너무 급하게 여기며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살아온 것 같다.
한국의 한 그룹 인터넷 설문조사에 따르면 매일 1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어떤 일에 쓰겠냐는 질문에 실제로 사람들은 여가생활, 휴식을 취하며 사색하는 시간, 책을 읽는 것,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의 답변을 내놓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늘 무엇인가에 쫓기듯이 살고 있다는 결과라고 본다. 주어진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것 또한 생각해보아야 하겠지만 가끔은 삶의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미국 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배우게 되는 기다림의 시간을 삶을 뒤돌아보는 여유의 시간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