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청원

2014-12-02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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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다르다.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상찬보다는 질시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그래서 천재는 그 천재성을 개화시키지 못하고 박제(剝製)되어 버리는 것이 영웅을 깎아내리려는 범용한 세계의 인간사다.

천재를 알아본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것. 그건 더 어려운 일이다.

천재 소년기사가 출현했다. 중국 북경일원에 번진 입소문이었다. 그 소문이 일본에까지 들려왔다. 1920년대 중반, 그러니까 바둑에 있어서 일본의 권위는 태산북두와 같다고 할까. 그런 시대였다.


그 이방의 천재소년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인 사람은 당시 일본 기계의 거두 세고에 겐스케였다. 세고에는 단위의 권위가 엄청나, 4단이면 고단자로 불리던 시절 일찍이 일거에 3단을 인정받은 천재 형 기사였다.

우여곡절 끝에 그 천재소년의 일본행이 마무리 되어갔다. 그러나 마지막 관문이 있었다. 정부당국이다.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던 당시였다. “중국의 천재소년을 키워 일본기사들을 모두 제압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당국자가 던진 질문이었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천재를 이기기 위해 일본 기사들이 기예를 닦고 또 닦을 때 일본 바둑은 그 만큼 발전할 것이다.” 그 대답에 중국의 천재소년 일본행은 허락됐다. 그 소년은 오청원이다. 그 때는 1928년으로 그의 나이는 14살이었다.

천재 스승을 만나 천재 소년은 그 천재성을 만개시킨다. 그리고 일본정부당국자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난다. 내로라하던 일본의 최고수들이 모두 그에게 패배를 당한다.

치수 고치기 10번기, 1938년부터 15년에 걸쳐 11번 실시된 이 진검승부에서 오청원은 전승을 거둔 것이다.

그 첫 번 상대는 역시 천재로 알려진 기다니다. 오청원이 승승장구하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이겨보지 못한 상대였다. 10번기에서 그러나 마침내 승리함으로써 어려운 상대를 뛰어넘었다.

바둑의 라이벌이었다. 그러나 오청원과 기다니 둘 간의 관계는 서로를 진정으로 아끼는 각별한 관계로 발전한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보기 때문인가. 하여튼 오청원과 기다니는 서로간의 불꽃 튀는 대국과 연구를 통해 신포석이론 도입 등 현대바둑의 틀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중국의 천재기사를 입양해 키워냄으로써 일본바둑은 또 한 차례 도약을 한 것이다.

“승부에 있어서는 승리자다. 승부를 초월한 입장에서는 동양문화의 정수이다. 그의 기풍은 변환자재(變幻自在) 화려하기 그지없다. 나는 그처럼 순결한 예술가를 본 일이 없다.” 노벨상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오청원론이다. 그 오청원이 100세로 타계했다.

한 천재가 천재를 만나 그 천재성을 활짝 개화시킨다는 건, 하나의 예술이고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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