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우윤미 ㅣ 공부에도 다 때가 있다

2014-11-24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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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어른들이 항상 하던 말이 있다. “공부에도 다 때가 있다.” 그때는 공부하는 게 참 싫었고 반항으로 가득 차 있을 때라 그 소리가 참 듣기 싫었는데 정말 나이를 좀 먹고 나니 그 말이 마음에 이리도 와 닿을 수가 없다. 요즘 들어 영어 공부를 좀 더 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단어를 외우고 또 외우는 데도 내 머리에 구멍이 있는지 어디론가 술술 빠져 나간다.

오늘 외운 단어를 내일 보면 얼굴은 기억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난 모양으로 그 기억이 희미하다. 때로는 너무 반가워 눈이 시큰해질 때도 있다. 나는 한국어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매일 공부하지 않으면 잊어버리니까 매일 20분씩이라도 보라는 얘기를 항상 입에 달고 산다.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도 보고 이를 닦을 때도 보고 자기 전에도 보고 지하철 안에서도 보라고… 이렇게 잔소리를 하면서 정작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이중인격자인지도 모르겠다.

내 학생 중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분들도 아이를 여럿 둔 중년의 학생들도 많이 있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고 있고 아이를 둘 셋이나 키우면서 공부를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더구나 서른 중반인 나조차도 매일 새로운 단어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라고 있는데 그분들은 오죽할까? 그 동안 숙제를 안 했다고 복습을 안 했다고 잔소리를 해 댔던 일이 무척이나 부끄럽고 미안하다.


내가 혹시 그들의 사기를 꺾지는 않았을까? 며칠 전 이번 수능 시험에서 여든 두 살의 나이에 그 동안 못 해 왔던 공부를 하고 시험에 응시한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와 화제가 되었다. 희수도 훌쩍 넘긴 나이에 고등학교 공부를 하셨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그 이야기는 화제가 될 만하다. 그러나 그 날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였을지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 우리는 결코 느끼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새로운 단어를 외운다. 공부에 ‘때’는 있지만 그 ‘때’가 어느 한정된 시기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젊었을 때 공부를 하든 나이가 들어서 공부를 하든 하고 있다는 그 행위에 의미를 두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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