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최현술 ㅣ 한마디의 보약

2014-10-24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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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만나는 행복원의 노인들은 내가 위로해드리기보다 오히려 위로 받고 그들의 산 지혜를 덤으로 받아온다. 얼마 전 나는 말없이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는데 “아이구 이번 달에도 박사님의 말은 보약입니다”라는 것이었다. 단지 힘든 상황에서 “잘 참으셨네요”라고 한 나의 말보다 알게 모르게 가슴속에 쌓이는 걱정거리들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답답한 마음이 줄어들고 나름대로 생각이 새롭게 정돈되어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그것을 보약이라고 믿으시는 것 같았다.

과연 어떤 말들이 보약이 될까 생각해본다. 어느 날 헐레벌떡 상담실로 뛰어들어오는 낸시는 “엄마는 거짓말쟁이”라고 투정된다. 방금 차에서 내릴 때 엄마가 “I love You”했는데 그것이 거짓말이란다. 중학생인 낸시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언뜻 보아도 약간 부족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의 진심을 못 알아차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니 말로만 사랑해 하는 엄마 말의 진정성을 지금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부족으로 자기표현은 서툴러도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는지는 잘 감지한다.

얼마 전 교회 친교실에서 같은 나이또래들이 자신을 왕따시키며 끼워주지 않았을 때 엄마가 자기를 보호해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 화가 많이 났겠구나”하고 말해주니 낸시의 어두웠던 표정은 밝아지면서 환하게 웃는다. 며칠 전에 감동적인 전화를 받았다는 눈물겨운 순이씨의 이야기다. 결혼 초부터 다툼이 많았던 순이씨 부부는 서로 냉각기를 가지기로 결정했고 남편은 아파트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후에 순이씨는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기쁜 소식을 남편에게도 그리고 친정식구들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혼자서 외롭게 끙끙대고 있었다. 요란하게 결혼했건만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삶의 벼랑 끝에 서게 된 순이씨에게 엊그제 기대하지도 않았던 남편의 전화를 받은 것이었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라고 물꼬를 터트린 남편의 말 한마디는 순이씨의 상처받은 마음을 순간적으로 치유해주는 보약이 되었다. 이렇게 짧은 한마디를 말하기 어려운 것은 깊은 뜻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사랑해, 고마워, 잘못했어, 용서해줘”라는 말들은 용기도 필요하지만 진심이 담겨있지 않으면 오해와 숨은 뜻의 의심까지 몰고 온다. 관계를 치유하는 것은 기본적이고 적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적절한 때에 순수한 마음이 담긴 한마디는 우리에게 치유를 가져오는 보약이 되고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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