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시각 2030] 윤원정 ㅣ 깨어남의 순간
2014-10-17 (금) 12:00:00
가끔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지고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이 생각들은 순식간에 내 머릿속에 자리잡아 한참동안 괴롭게 한다. 이 세계속 내 존재감의 위치라던가 당연히 받아들이던 생각들 또는 행동들에 대한 의구심 등 혼잡하고 장황한 생각들이 대부분이다. 주로 텅 비어 있는 공간에서 이런 경험을 한다. 어쩌면 날씨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한 번은 오후 4시쯤, 쌓여가는 피로함에 몸의 자세가 흐트러지고 먼 곳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가 점점 단순한 소리로 들리기 시작할 때쯤 그 흐리멍텅한 정신 속에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보다 더 아주 사소한 것에 반응할 때도 있다.
지나가는 사람의 신발 색깔이라던가 이상하게 흥미로워 보이는 화장실 바닥에 놓인 타일들의 조합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일상적인 생활과 몽롱한 정신 속에서 순간적인 새로운 감정이나 생각, 또는 ‘깨어남’을 흔히 epiphany라고 한다. 깨달음 또는 깨어남의 순간이라고 설명되는 이 epiphany라는 경험은 예술가들에겐 새로운 작품의 영감이 되기도 하고, 또 한 예술가의 인생과 작업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조이스는 자신의 epiphany들을 글로 써내었다. 자신의 epiphany들 모음집을 토대로 <더블린 사람들>을 집필했다. 조이스의 유명한 epiphany 중 하나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다시 실렸다. 그리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은 조이스의 대작 <율리시스>에 다시 등장한다. 일상에서의 찰나의 순간이 결국 <율리시스>라는 대작을 쓰게끔 한 것이다.
이렇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아주 평범한 경험에서 영감을 받는 예술가들을 보면 가슴이 뜨겁다 못해 감정이 벅차올라 무작정 공책을 펼친다. 한참을 하얀 종이를 바라보다 보면 ‘아 그는 천재였지’ 하고 다시 가방속에 공책을 집어 넣는다. 예술가가 아닌, ‘천재’가 아닌 나는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와 나를 괴롭히는 이 생각들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그리고 제임스 조이스 같은 천재도 아닐뿐더러 그와 같은 길을 걸을 자신도 없다. 취업의 문턱에서 허덕이는 이 시점에 경제적 보장이 어려운 길은 힘들지만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 순간적인 생각에 들떠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난 새로운 꿈을 꾸는 나 자신을 질책하며 흐트러진 일상의 질서를 바로잡으려 노력해야 한다.
한동안은 그 새로운 생각에 미련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럴수록 몸이 수고를 해야 한다. 더 부지런하게 시험공부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하며 당장 눈앞에 있는 ‘현실적인’ 일들에 집중을 한다. 얼마 전까진 epiphany였던 경험을 ‘잡생각’이라 구분짓고 억지로 머릿속 저편으로 치워버린다. 현실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 세대는 이 ‘깨어남’의 순간을 철저히 외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