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박현숙 ㅣ 친구

2014-10-09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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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하늘 빛이 희미해지는 오후, 눈물이 나고 외로운 날엔 학창시절에 대한 향수가 나를 엄습한다. 서로의 기쁨을 배로 만들고 슬픔을 반으로 나눠 가지며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써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친구들이 그립다. 무엇이든 이유없이 언제나 내편이었던 친구들이 보고싶다. 이렇게 훌쩍 지나버린 삶의 발자국을 뒤돌아보면 고등학교 시절이 먼저 떠오른다.

이른 아침부터 만원버스에 시달려 학교에 도착해 반가운 친구들과 수다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의 빛과 소금이 되는 점심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땐 왜 그리 항상 배가 고프고 먹고 싶은 것도 많았는지 친구들과 같이 하는 점심은 언제나 최고의 만찬이었다.

비록 공부는 힘들지라도 매일 밤 10시까지 야자(야간자습)를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기도 했다. 몸은 피곤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공부했다는 자부심으로…입시에 대한 부담감으로 시험성적에는 서로의 경쟁자가 되기도 하지만 같이 웃고 서로 위안이 되기도 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한 교실에서 부대끼며 즐거운 일도 고생도 함께했다.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점점 퇴색해지고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더 그리운 것일지 모르겠다. 또 그 시절엔 매일매일 지겨워했던 흑백의 교복들이 지금은 그립기도하다. 하지만 교복을 입을 땐 아침마다 ‘오늘은 뭘 입지’ 하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었다. 졸업식엔 지겹도록 입었던 검정교복을 찢기도 하고 검은색이 싫어 하얀 밀가루를 뒤집어 쓰기도 했다.

고등학교시절땐 빨리 대학생이, 어른이 되고 싶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더 많은 자유를 얻으면 그만큼 더 무거운 책임과 수많은 갈림길에서 갈등을 겪게 될거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당연하게 모이고 작은일에도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아무런 이해타산없이 순수하게 어울렸던 친구들과의 우정을 시간적, 공간적이라는 핑계로 관리하고 유지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함께 행복했던 시간들이 추억이 되고 이 추억들이 있어 위로가 된다는 것을 간과하고 살았나 보다. 몇해 동안 연락없이 지낸 친구들과 통화에서 오랫동안 소원했던 시간들이 무색하리 만큼 편안함을 느낄 땐 아! 이래서 오랜 동무가 소중한 존재구나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문디 가시나 와 이리 소식이 없었노?’ 핀잔을 주며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를 오늘 당장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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