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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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하탄 언더문화의 상징 영원한 ‘아듀’

2014-08-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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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명물 ‘킴스비디오’ 마지막 매장 문닫는 김용만씨

뉴욕 일원 영화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맨하탄의 명소 ‘킴스비디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한국인 김용만(사진)씨가 1986년 세탁소 한구석에서 시작해 한때 11개 점포에 23만명의 회원을 둘 정도로 번창했던 킴스비디오의 마지막 매장이 이달 27일 간판을 내린다.

비디오 대여·판매점이었지만 희귀 영화가 가득해 미국 대학의 영화과 교수와 학생, 영화 마니아, 영화배우들로 늘 북적거렸던 곳이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회원등록부터 시켰던 교수도 있었다.

1979년 미국에 이민 온 김씨도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 영화 프로덕션을 전공한 영화인이다. 뉴욕 문화의 상징인 이스트빌리지에서 킴스비디오는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구심점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요즘 한창 폐업 세일 막바지인 킴스비디오는 선반 곳곳이 텅텅 빈 채 ‘아듀’를 고하고 있었지만 김용만씨는 벽에 붙은 영화포스터를 떼어내면서도 "없어진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씨와의 문답.
-여러가지 생각이 들 것 같다.
▲1980년대말∼1990년대 호황일 때가 있었다. 킴스비디오 매장 중 제일 컸던 ‘몬도 킴’의 직원이 300명이고 미국 전역 64개 대학에 비디오를 납품했다. 뉴요커들은 ‘꼭 손님으로 가지 않더라도 그곳에 가면 재미가 있다. 유명인을 만나고 기대치 않던 이벤트를 접하며 새롭고 특별한 것을 배운다’는데 열광했던 것 같다.

-처음 창업할 때는 어땠나.
▲처음부터 ‘대안시장’을 목표로 삼았다. 메인스트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그러나 문화에 마음이 열려 있고 잘 교육받은 사람들을 겨냥했고 거기에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포함시켰다. 그들이 만든 실험용 영화를 재편집해 배급하거나 그들이 만든 음악을 매장에서 틀어주거나 공연하도록 했다.

-언더그라운드 시장에서 사업적 성공은 힘들지 않은가.
▲나도 영화를 공부했기에 확신이 있었다. ‘잘 교육받고 질 높은 문화를 원하는 사람이 이런 영화를 안좋아할 리 없다’는 믿음이었다. 개인적으로 할리우드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있었다.

-고객들은 어떻게 반응했나.
▲우리는 ‘문화를 공급한다(cater)’라는 자부심으로 일했다. 그래서 직원들이 ‘건방지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고객의 입맛에 맞는 것을 우리가 만들어내 고객이 따라오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사라진 좋은 영화를 이탈리아, 홍콩 등지에서 많이 찾아내 소개했다. ‘갈증을 느끼는 영화’를 갖다놓으면 고객들은 미친 듯 좋아했다. 우리가 제시하는 것을 빠르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손님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사업에 고비는 없었나.
▲미국 10개 도시의 대학가에 매장을 열 생각을 갖고 있을 즈음 인터넷이 등장했다. 나도 인터넷 웹페이지 구축하고 킴스비디오가 가진 고유한 영화들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집중했다. 1997년∼2005년은 거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4∼5년 지나니 큰 자본이 필요한 일이라는 감이 왔다. 그때 작업을 포기했어야 했다.

-당장 사업에 타격이 왔을텐데.
▲인터넷 거래가 활성화하면서 우리에게 비디오 납품을 주문하던 대학의 주문이 줄었다. 납품업체도 스스로 웹사이트를 만들고 판매에 나섰다.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도 등장했다. 더는 사업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 2005년부터 매년 2개씩 매장을 닫았다.

-소장품은 어떻게 했나.
▲’몬도 킴’이 소장했던 DVD와 VHS 5만5,000개는 2008년말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살레미시에 기증했다. 디지털화 작업이 현재 진행 중이다. 다른 매장의 컬렉션도 컬럼비아대학, 뉴저지주립대학,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동국대학 등에 기증했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은 4,000개 정도다. 그중 800여개는 내가 좋아하는 무성영화다.

-사업 규모를 줄여 계속할 생각은 없었나.
▲2008년 금융위기에 사람들은 영화를 볼 여유도 없어졌다. 나도 지쳐 있었다. 매장을 모두 정리했으나 15년 이상 같이 일하던 직원 5명이 계속 일하고 싶어 했다. 2008년 11월 현재의 이 매장을 오픈해 킴스비디오의 명맥을 살렸다. 직원들에게 운영을 맡긴 뒤 나는 멕시코에 가서 새 사업을 했는데 2년 뒤 돌아와 보니 매장의 경영난이 심했다. 월세를 많이 올려달라는 요구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앞으로 계획은.

▲킴스비디오는 다른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마지막 간판을 내리지만 아직도 없어진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 괜한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 앞으로는 먹거리 분야에서 대안시장을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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