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윤선 ㅣ 말의 힘

2014-07-30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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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달래도 듣지 않고 울기만 하는 평강공주 때문에 화가 난 임금님이 외쳤다. “공주, 자꾸 울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 보낼 것이야.” 나이가 차 혼인할 때가 된 평강공주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소녀의 신랑감은 바보온달이라고 제가 어렸을 적부터 아버님이 누누이 말씀하셨으니 저는 그에게 시집을 가야 합니다.”

“선화공주는 정을 통하여 밤마다 서동이란 사내를 몰래 안고 잔다네.” 이 노래가 퍼져 나가 결국 장안의 모든 사람이 이를 사실로 알게 되었고 서동은 감히 쳐다볼 수도 없었던 선화공주를 아내로 얻게 되었다.

80년대 후반 AIDS 에 대한 대중적 캠페인이 불붙기 시작한 미국에서는 느닷없이 AYDS라는 다이어트 약품이 30% 이상 판매율 급증을 보였다.


1964년 미국 웨스트 코스트 초등학교에서는 학기 초 전체 학생의 20%를 무작위로 뽑아 연구자가 교사에게 ‘아주 IQ가 우수한 아이들’이라는 증명되지 않은 정보를 주었다. 한 학년이 끝난 후 실험집단 아이들의 IQ를 측정하니 어떤 아이들은 최고 25점이 향상되는 등 비실험 집단 보다 현저한 상승률을 보였다.

한 연구에 의하면 노년기에 들어 함께 어울려 사는 사람들보다 고립되어 사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높다고 한다. 그 이유는 생리학적 원인이 아니라 의사소통이 인간의 건강상태를 조절하는 역동적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위 사례들에 담긴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시공간을 초월한 말의 힘이라는 공통점을 담고 있다. 언어는 또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세상을 보는 시선과 생각의 넓이에 영향을 미친다.

에스키모의 눈을 일컫는 수 십 가지 단어, 논농사를 짓는 필리핀 부족의 쌀의 품종을 나타내는 약 백 개의 명칭, 아랍인들의 낙타에 대한 수많은 명칭이나 남태평양 오지 색맹들만 모여 사는 섬에서 빛의 음영에 따라 사물을 묘사하는 형용사가 발달된 것들이 좋은 예이다.

모국어가 점점 무디어져 가는 이민 생활, 다음 ( ) 안에 말을 채워 넣으며 묶여있는 감정의 줄을 조금 풀어줌은 어떨까? 비 내리는 소리는 마치 ( ) 같다. 찬물에 손을 담그면 ( )하다. 해가 질 때면 ( ) 기분이 든다. 보름달을 보면 ( )하다. 내 사랑하는 사람은 ( )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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