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단어를 보고 각각의 ( )안에 생각나는 단어를 적어보라. 제시된 세 단어 간에는 아무 연관 관계가 없다. ‘아름다운( ), 가벼운( ), 높은( ).’
데이비드 로젠버그라는 심리학자는 정신분열 환자들을 인터뷰하며 이 단어들을 불러주고 마음속에 생각나는 단어를 말해보라고 했다. 그들은 단번에 ‘아름다운-추한, 가벼운-무거운, 높은-낮은’ 같은 반대말의 조합을 만들어냈다.
이에 흥미를 느낀 로젠버그는 일반인과 노벨 수상자, 예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같은 문제를 내보았다. 일반인들은 ‘아름다운-소녀, 가벼운-깃털, 높은-빌딩’의 예처럼 가장 가깝게 연상되는 이미지의 물건이나 사람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와 달리 노벨 수상자들과 예일 대학생들의 대다수는 정신분열 환자들과 같이 반대말의 조합을 대답했다고 한다.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창의적 대답을 서로 다른 피실험군에서 들을 수 있었음이 매우 흥미롭다.
더운 여름날 아이스크림을 두 개의 와플 사이에 넣어 먹어보자. 아이스크림이 녹아 줄줄 흘러내려 여간 먹기에 힘들지 않을 것이다. 잡초가 뒤덮인 가을 산이나 겨울 산을 등산하고 내려오면 바짓단 자락에 민들레나 엉겅퀴 같은 식물의 씨앗 주머니들이 잔뜩 붙어 있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틈새 호기심이 발동하여 만들어 낸 것이 아이스크림콘과 어린 아이들의 신발 끈 대신 많이 쓰이는 일명 ‘찍찍이’ 벨크로이다.
예술, 문학과 같은 창작의 영역뿐만 아니라 확고한 경험적 사실을 근거로 한 보편성과 객관성의 과학 세계 또한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과학자들에게 상상력이 없다면 보이지 않는 빛의 세계와 들리지 않는 소리의 세계를 넘나들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 있을까? 사과는 언제나 땅으로 떨어지게 마련이고 별은 하늘에서 빛나며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있는데 말이다. 그들의 상상력은 이전에 풀 수 없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최초의 가설이 된다.
한 친구는 가족과 함께 몇 년간 파리에서 살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술 시간, 사람의 얼굴들을 각양각색으로 칠했다고, 을씨년스러운 파리의 겨울 하늘을 생각하며 하늘을 회색으로 칠했다고 꾸지람을 들은 그의 일 학년짜리 딸아이는 결국 다른 나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연한 복숭아 빛을 살색으로 부르던 시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의 상상력도 그렇게 퇴색해 버렸을 게다. 살색의 틀에 갇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