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홍소영 ㅣ 설악산

2014-03-20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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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산이 좋은지 나는 늘 만나는 친구에게 산타령, 산자랑을 늘어놓는다. 오늘도 이른 아침 예쁜 동생들과 너끈히 산을 타며 저수지 앞에서 체조를 하고 오는 길은 정말이지 산맛 꿀맛이다. 십대부터 oo산, oo산을 종주하며 그 경험을 서로 나누는 것이 무슨 숙제인 양 꼭 한번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지금의 남편과 남친으로 만날 그 무렵 일행들과 설악산 종주를 마친 이십대 초반의 일이다. 백담계곡으로 올라가 소청봉, 대청봉을 찍고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는 이틀에 하기엔 그리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폭우를 뚫고 봉정암에 올라가던 중 건장한 두 남자가 들것에 심히 다친 사람을 태우고 내려올 때(머리까지 가마니를 덮어서 죽은 사람이었는지도), 우린 너무 놀라 요즘 말하는 멘붕 상태로 생라면에 짠 스프를 뿌려 먹으며 탈진을 예방해야 했다. 뒤로도 앞으로도 가기 어려운 험난한 빗길을 뚫고 봉정암에 오른 우리.

난생처음으로 빗물 위로 텐트를 치고 자야 하는 경험을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채, 얇은 텐트 바닥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 그 여름밤의 추위는 지금 생각해도 으슬으슬하다. 새벽부터 잠이 깬 우리는 다리에 척척 감겨 붙는 청바지가 어찌나 불편하고 무겁던지 스위스칼(?) 같은 것으로 청바지를 반바지로 잘라 입고 대청봉에 올라 “야호!”를 맘껏 외쳤다. 그 짧은 감동의 순간과 풍광을 가슴에 담으려고 그 먼 길을 걸어 여기에 서 있구나.. 하면서.

날씨가 사나워지기전에 천불동 계곡으로 발길을 재촉해서 케이블카가 있는 근처까지 내려오는데 신들린 듯이 발걸음은 아래로 아래로 날듯이 내려가고, 발바닥이 아파서 울고 싶은데 너무 힘이 들어 울 수도 없었다. 내려오는 내내 ‘앞으로 살면서 지금보다 힘이 들 때는 결코 없을거야’ 했는데 과연 그랬다. 아직은 그때의 극한을 넘나들 만큼 몸이 힘이든 적은 없었다. 아무리 지치고 힘이 들어도 그때를 떠올리면 ‘것 쯤이야!’ 싶다. 군대를 다녀온 오빠나 남편의 행군 얘기 정도에 견줄 만큼의 강렬한 이 체험은 사는 동안 평생 몸이 아프지 않게 해줄 백신을 맞은 느낌의 힘을 공급해준다. 고맙게도 설악산의 기억은 오늘을 사는 내게 뽀로로 체질로 이어진다. 오늘 새삼 설악산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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