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세 때부터 미국 거주한 김태흥씨 8일째 시설 수용…추방 위기
▶ 텍사스주립대 박사과정 중 동생 결혼식 참석차 한국 다녀왔다 봉변
▶ 14년전 대마초 소지 기소 이력 탓 추정…”구금·추방 이유 안돼”
미국 영주권을 지녔으며 미국 주립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 국적의 40대 과학자가 한국을 방문했다가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당국에 붙잡혀 수일째 억류된 것으로 전해졌다.
29일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이하 미교협)에 따르면 텍사스에 거주하는 한인 영주권자 김태흥(40) 씨는 지난 21일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던 중 '2차 심사' 명목으로 붙잡힌 뒤 이날까지 8일째 당국 시설에 구금돼 있다.
한국에서 태어난 김씨는 다섯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와 지금까지 35년 넘게 미국에서 살았으며, 텍사스의 명문 주립대로 꼽히는 A&M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라임병 백신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남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달 초순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가 2주간의 일정을 마치고 혼자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영문도 모른 채 억류됐다고 미교협은 전했다.
김씨의 변호인은 당국이 그를 왜 구금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으며, 지난 25일 어머니와 짧은 통화를 허용한 것 외에는 김씨가 변호사와 상담하거나 가족과 연락하는 것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2011년 소량의 대마초 소지 혐의로 기소된 전력이 있지만,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고 이를 모두 이행했다고 한다.
김씨의 사연은 이날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도 보도됐는데, 이민·출입관리 당국인 세관국경보호국(CBP) 대변인은 이 신문에 보낸 성명에서 "영주권자가 신분에 어긋나게 마약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 출두 통지가 발령되고, CBP는 이민세관단속국(ICE) 집행추방작전부(ERO)와 구금 공간을 조정한다"고 밝혔다.
WP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단속이 범죄 경력이 미미하거나 전혀 없는 불법 이민자들뿐 아니라 유효한 체류 비자나 영주권을 소지한 합법 이민자들까지 휩쓸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의 부모는 198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뒤 여러 절차를 거쳐 시민권을 땄지만, 당시 김씨와 남동생은 부모를 따라 자동으로 시민권 혜택이 주어지는 미성년 나이를 이미 지난 탓에 시민권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의 어머니는 "남편과 저는 모두가 공정하게 대우받는 자유와 평등의 나라라고 믿고 이민을 왔다"며 "제 아이들은 사실상 미국이 고향인데, 단지 과거에 실수를 했거나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갇히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김씨의 변호인은 "김씨가 정부 지원을 받아야 할 연구자임에도, 헌법까지 어기며 연행한 사실에 분노한다"며 "CBP 관계자는 김씨의 변호사 접견을 거부하면서 미국에서 35년을 살아온 이에게 '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비판했다.
미교협은 만성 천식 환자인 김씨가 스트레스로 증상이 악화할 수 있으며 현재 약을 제대로 공급받는지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이 단체는 "CBP는 규정상 억류 최대 기간이 72시간(3일)임에도 불구하고 법령을 무시하며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이런 장기간의 구금과 변호사 접견 불허는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미교협은 김씨가 정식 재판을 통해 법적인 권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한편, 연방 의원들을 대상으로 김씨의 사연을 널리 알리고 공론화해 김씨가 추방을 피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계획이다.
미교협 관계자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현재 미국 정부의 이민자 단속은 사실상 무법지대"라며 "법률이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탄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