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신희정 l 참외할머니

2014-03-19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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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회에서 일하다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대부분 우리 도움을 원하는 분들은 연세가 있으시지만 우리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상 젊은 분들도 있다. 문의하는 분들 중 가끔씩 마땅히 문의할 곳이 없어서 그냥 혹시나 해서 전화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봉사회라는 이름 때문에 모든 정보를 다 얻을 것이라는 기대로 찾는 분들도 있다. 이분들 중에는 그들이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할 경우 그냥 화를 내기도 한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고 전화로 안 보이는 사람하고 통화할 때 기본 예의조차도 갖추지 않은 채 전화하는 경우도 있다. 가끔 우리 민족 특유의 특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어르신들은 맨날 마음이 급하다. 전화 메시지를 남겨주시면 좀 늦더라도 연락을 드릴텐데 참지 못하고 무작정 예약없이 찾아오거나, 전화를 몇주전에 했다면서 본인의 사연들을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분들도 있다. 반면 작은 대답에도 너무나 고마워 하시는 분들도 있다. 물론 예약을 하고 오실 때 도넛츠, 초코파이, 제철 과일을 고마움의 표시로 사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 마음은 멀리서 미리 사온 뜨거운 커피가 차가운 커피로 변해 버렸어도 우리 직원들 마음에 남는다. 그렇게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사들고 오는 분들 중 유난히 키가 작은 할머니 한 분이 기억에 남는다. 너무나 작은 키의 할머니, 아들을 초청하고 싶은데 서류상으론 당신이 원하는 대로 아들을 초청할 수 없는 안타까운 케이스였다.

본인도 그런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에 혹시나 하는 희망을 저 버리지 않고 오셨던 것 같다. 한번은 사무실을 들어오시는데 본인 몸의 반만한 크기의 백팩을 메고 오셨다. 그날도 역시나 할머니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답을 드리지는 못했는데 무겁게 들고 온 백팩을 열어 보이셨다. 그 가방에는 한가득 참외가 들어 있었다. 우리에게 주시려고 그 무거운 참외를 등에 메고 오셨던 것이다. 그냥 오셔도 되는데…우리 사무실 이전 후 그 할머니를 더이상 뵐 수가 없다. “할머니 우리 이사갔어요.” 어째 물어 물어서라도 찾아오시지 않을까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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