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윤지서 ㅣ꽃도 흔들려야 핀다
2014-03-17 (월) 12:00:00
“엄마 거긴 집이 없데, 가난한 사람은 종이박스가 조금 밖에 없고 부자는 박스가 많은가봐.” 올 봄방학에 자원봉사를 다녀올 곳에 대해 설명해주던 딸이 슬픈 표정으로 말끝을 흐린다. “현영아, 정말 괜찮겠어?" 한국에 있는 이모들 하고 올 여름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고 또 남은 기간에는 코스타리카로 의료 봉사를 다녀오는 일정이 진작에 잡혀 있는데 너무 무리하게 세우는 계획이 아닌가 싶어 걱정이 먼저 앞선다.
어린 나이에 친구들 하고 바닷가에 놀러 가고 싶은 유혹도 뿌리치고 열심히 공부해서 받은 장학금을 여비로 써야 하니 쉬운 결정은 아니었겠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딸이 자랑스럽다. 맞다. 난 딸 바보다. 오년을 기다리다 얻은 딸이 온실 속에 화초로 자랄까 아님 흔히들 말하는 네가지(?)가 없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나 않을까 은근히 신경쓰였지만 딸은 별 무리없이 잘 자라 주었다.
대학에 지원할 때였다. 나름 고등학교 생활을 성실히 했고 시험성적도 잘 나와서 동부 쪽에 위치한 명문대에 특별 전형으로 서류를 넣었다. 성적 못지않게 중요한 교내외 활동에 욕심을 부리는 딸 덕에 나도 몇 년간을 바쁘게 보내야 했지만 합격을 꿈꾸며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환한 미소를 짓던 딸의 모습은 정말이지 감동 그 자체였고 그런 딸과 함께 하는 나는 더없이 행복했다. 특별전형에서 일반전형으로 전환됐으니 추가하고 싶은 서류를 첨부하라는 내용의 소식이 전해진 건 그동안 미뤄왔던 가족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딸이 먹고 싶다던 얼큰한 라면으로 차려진 식탁을 마주할 때였다. 전세계에서 몰려온 수재들과 다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건 합격률이 그만큼 낮아진다는 말이었다. “엄마 나 어떻게 해?” 하며 수저를 든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딸은 그날밤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에 시달려 꼬박 일주일을 앓아 누워야 했다.
살면서 수없이 만나야 하는 크고 작은 모양의 좌절들. 세상을 향한 첫 관문에서 한 실패를 거울 삼아 이제는 앞만 보고 달려 가기보다 옆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싶어하는 모습으로 성장한 딸이 너무나 대견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