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인생의 행복

2014-02-20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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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니까 ‘인생은 미스터리’라고 하는 것이 딴 사람 눈에는 행복해 보이는 이도 실제 자신은 무척 불행하다고 여기고 있으며 또 곁에서 봐서는 영 실패한 듯 한 인생인데도 본인은 대단히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대 재벌총수를 TV 뉴스에서 보았다. 나이는 나보다 두어 살 쯤 위 인 것으로 아는데 몸 움직임은 영 둔하다. 아니 누구 부축 없이는 잘 걷지도 못하는 것 같다. 작고하신 아버지도 나라에서 최고의 부자였으니 그 분은 서양의 속담대로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신 분이고 돈이야 평생 동안 원도 한도 없이 쓰셨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당신은 행복했습니까" 묻는다면 본인은 무어라고 대답하실까. 만약 신(神)이 나에게 "너 저 사람하고 모든 처지를 바꿀래" 묻는다면 나는 "No" 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왜 바꿉니까"내가 이곳 대한통운 지점장을 할 때 우리 동아그룹의 최 회장이 계열사 사장 몇을 데리고 페블비치(Pebble Beach)에 온 적이 있다. 무슨 엄청 큰 프로젝트를 백텔(Bachtel)사의 슐츠George Shultz)회장과 협의하러 온 것이다. 나는 현지 책임자로서 통역겸 비서겸 운전기사로 일주일 동안 회장일행과 호텔에 묵으면서 곁에서 보니까 회장님은 매사 인간적인 배려를 아끼지 않는 참으로 자상하고 좋은 성품인데 안타까운 것은 지독한 불면증으로 매일 밤잠을 못 자는 것이다. 그리고 입맛도 잃었는지 페블비치의 최고급 식당을 예약을 하고 나가시자고 하면 "너희만 먹고 오라고 안 나가고 혼자 앉아서 컵라면을(고추장에 풀어) 자셨다. 하긴 벌려놓은 사업도 많고 지켜야 할 재산도 많은데다가 가정사 바람 잘 날이 없으니 얼마나 생각이 많고 걱정도 많았겠나.

얼마 전에는 아나운서 출신의 젊은 부인과 이혼을 하였다. 인생에 있어서 돈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저 먹고 살 것만 있으면 가족과 오순도순 사는 즐거움이 바로 행복이 아닌 가 싶다. 나의 오랜 친구 P군은 미국에 와서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무역을 한답시고 하다가 클레임에 몇 번 걸려 큰돈을 날렸고 경험도 없이 운동장(?) 만큼이나 큰 가구점을 인수했다가 손해를 봤고 다음에는 무슨 리테일(retail) 가게를 하다가 그나마 남았던 돈까지 다 날렸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 친구는 얼마나 몸 고생 맘고생을 했는지 나중에는 그 스트레스가 암(癌)으로 발전되더란다. 위를 거의 다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으려고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군은 비로소 바로 곁에 다가온 죽음을 느꼈다. 그래서 오랫동안 잊었던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P군은 그 후 몇 번이나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지만 ‘아직’ 건강하게 살아있다. 그 친구 얘기가 "사업에 실패하고 몸이 망가지는 어려움을 겪지 않았었다면 나는 내 생전에 하나님을 못 만날 뻔 했다고 한다. 비록 지금 단칸방 서민아파트에서 어렵게 살아도 본인 생활은 항상 기쁨과 찬송에 넘친다. 그 친구를 보면 영적으로 누리는 평강이 또한 행복임을 알겠다.


동부 어느 식당에서 일하는 여자 종업원의 IQ가 160이 넘었다는 기사를 오래 전 읽은 기억이 있다. 아인슈타인 박사의 IQ가 160이였다니까 그 여자도 대단한 천재였음에는 틀림없다. 이 뉴스에 흥미를 느낀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사람을 보내서 "항공우주국에서 근무할 의향이 있는지 이 여자에게 물었다. 이 때 많은 보수와 함께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지위를 제의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우리상식으로 당연히 Yes 하고 따라나서야 할 텐데 그 여자의 대답은 의외로 No. 그런 직장보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것이 더 행복하단다. 이처럼 행복은 <자기만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아무리 돈이 많고 사회적인 지위가 높고 권력이 있다 하더라도 삶에 대한 자기만족이 없다면 그거야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누가 나더러 "당신 행복하게 살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쭈뼛쭈뼛 생각해 볼 것이다. 사실 나는 그동안 행복하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은 늘 뒷전이고 항상 긴장하고 뛰면서만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만 그랬나. 우리 이민 1세들이 모두 그렇게 살았다. 유학생으로 미국에 와서 일하며 공부할 때도 그랬고 직장생활 할 때도 그랬으며 개인사업을 할 때도 그랬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생의 모퉁이마다 그래도 행복은 오아시스처럼 거기에 있어서 어렵고 힘들 때마다 내 힘이 되어 주었음을 알겠다. 그래서 누가 행복했냐고 나에게 물으면 당연히 “네”라고 대답해야지.

나는 귀중한 나머지 내 인생을 아무쪼록 행복하게 살고 싶다. 생각을 부드럽게 하고 주변을 깨끗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도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지혜를 배우며 살아야 겠다. 아침에 체조를 한 시간쯤 하고 집에 돌아와서 커피를 마시며 읽던 책을 펼치고 앉아 있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오전에는 이렇게 맑은 정신으로 책을 읽다가 오후에는 체육관에 가서 운동과 수영을 또 한 시간쯤하고 그런 다음 마누라가 가자는 대로 따라나서야지. 결혼 후 지금까지 인생을 내 위주로만 살아온 것이 미안해서 나는 아내에게 "은퇴한 다음부터는 당신 위주로 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약속을 매일매일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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