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홍소영 ㅣ 나의 금메달

2014-02-13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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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내리는 비에 해갈 소식도 반갑지만, 시에라 산맥에 내릴 눈을 생각하면 설렘과 추억이 아줌마의 가슴을 들뜨게 한다. 폭신한 새하얀 눈이 내 마음을 홀려 이십 대의 청춘으로 돌아가게 했던 작년 새해 첫날, 나는 두 남자(?)와 함께 신나게 눈을 가르며 놀고 있었다. ‘아! 이 언덕은 내 수준이 아닌데…’ 망설임 없이 내려가는 아들을 쫓아가다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 엉덩이가 뒤로 빠지는 순간 나는 여지없이 고꾸라졌다.

하늘만 보며 한참을 누워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는데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통증보다도 섬뜩했던 무릎 안쪽에서 들려온 돼지갈비 뜯는 소리. 겁에 잔뜩 질린 아들은 울먹이며 나를 빤히 보고 있고, 남편은 이미 저만치 내려가서 손짓만을 하는 상황에서 나는 “괜찮아, 엄만 괜찮아.” 하며 놀란 아이를 달랬다. 남편이 있었다면 데굴거리며 울고도 남았을 텐데 속으로만 실컷 눈물을 먹고 정신을 다잡았다, 스키에 대한 두려움을 엄마를 보고 배우게 할 순 없단 생각에 스스로 마취를 놓은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호수경치가 다시 보고 싶다는 아들을 쫓아 산 정상으로 올라가서 기다란 능선을 따라 밑으로 내려왔다. 무사히 내려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부츠를 벗는 순간 나는 밀려오는 통증에 참았던 눈물로 세수를 해야 했다, X-Ray필름을 보며 패트롤모빌을 타고 내려와야 했다는 의사의 말에 스키를 다시 타지 못할 걱정에 한참을 울었다.

새해를 시작하며 식구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이 미안했지만, 운전하고 상관없는 왼쪽 다리여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엄마정신’이라고 했던가, 6개월이 넘게 절뚝거리면서 매일같이 산행을 하게 해준 힘은 스스로의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것 같은 마음이었다. 두려움에 다시 한 번 올라섰던 이번 겨울 스키여행의 첫 활강. 심호흡을 깊게 하고 조심조심 내려왔다 – 넘어지지 않고. 내 속을 알 리 없는 아들도 “엄마 장해! 참 장해!”한다. ‘아, 이런 느낌..’. 목발과 깁스로 불편했던 아픔이 행복과 감사로 변신하는 찰라이다.

이틀 전 단 한 번의 착지 실수로 올림픽 금메달을 놓친 고령의 여자 스키선수가 눈물로 토해냈던 이 한마디가 가슴을 울렸다. “…But… this is our 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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