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윤지서 l 빵집과 찜질방 사이
2014-02-03 (월) 12:00:00
얼마 전, 달라스 지역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도착하면서 내린 아이스 스톰 때문에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때 아닌 한파로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이른 아침부터 갈 곳을 잃은 우리가 생각해 낸 곳은 24시간 오픈하는 찜질방이었다. 몸을 녹이면서 두어 시간 정도 쉬다가 오후에 서둘러 움직인다면 일정에 큰 무리가 없을 듯했다.
하지만 찜질방 문화에 적응(?) 못하는 남편은 한사코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춥고 썰렁한 주차장에 남편을 혼자 둘 수 없기에 애교 반 협박 반으로 겨우 한쪽에 앉아 책 읽는 것으로 합의점을 찾았다. 한산한 찜질방에 들어섰을 때 마침 매니저를 만났다. 우리 사정을 알면 일인당 35달러 하는 입장료를 할인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매니저는 꽁꽁 얼어버린 날씨만큼이나 춥게 느껴지는 표정으로 70달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 전 유학생 시절 여름 방학을 맞아 미국 동서 횡단 여행을 한 적 있다. 동부 쪽에서 시작된 여행이 캘리포니아에서 반환점을 찍고 다시 남쪽으로 이어졌는데 밤새 운전을 한 끝에 이른 아침에 달라스 한인지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리워하던 한국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려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꾀죄죄한 몰골로 한인타운을 기웃거릴 때 어디선가 빵 굽는 냄새와 함께 작은 음악 소리가 들려 왔다.
무작정 이끌렸던 발걸음이 멈춰진 곳은 중년 부부의 자그마한 빵집 앞이었다. 서성대는 우리를 향해 환한 미소로 문을 열어 주시던 부부… 따스한 커피 한잔과 바로 구워낸 빵을 건네 주시던 그 손길이 찜질방에 들어가면서 주마등처럼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누군가 사람은 추억으로 산다고 했던가? 아마도 얼마 전에 찜질방에서 겪었던 일도 내 마음 한 켠에 씁쓸한 추억거리로 자리잡을 것이다. 내가 만났던 빵집과 찜질방을 사이에 두고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많은 변화들을 되짚어 보면서 말이다. 이제는 모습조차 희미해진 기억이지만 내 마음에 각인된 한인 부부의 훈훈한 사랑과 정이 있어 이 추운 겨울을 따스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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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서씨는 대학 다니는 딸을 둔 주부 25단, 현 UNO development 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