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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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911로 전화를 거세요”

2014-01-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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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마비 노인, 길건너 소방서‘모른척’해 결국 사망
주민들 소방당국·DC정부 맹비난


한 남자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쓰러졌다. 함께 있던 그의 딸은 마침 길건너 보이는 소방서로 황급히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소방관은 “일단 911로 전화를 거세요. 우리에게 출동 명령이 내려오면 그 때 도와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재빠른 응급조치를 받지못한 남자는 결국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블랙 코미디의 한 장면 같은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워싱턴 DC에서 일어나 비난의 소리가 높다. 주민들이 관련 소방서는 물론 공무원들의 ‘불친절’로 말썽이 잦은 시당국을 비난하고 나서자 워싱턴 DC시장은 사건에 대한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그 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 페드로 리베이로 시장 대변인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며 “그같은 절차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말도 안된다”고 소방당국을 비판했다.
사건은 27일 대낮, 워싱턴DC 노스이스트의 로드아일랜드에서 일어났다. 도움을 구하기 위해 뛰어 들어간 소방서에서 황당한 답변을 들은 메드릭 세실(77)의 딸은 소방대원의 말대로 911 전화로 긴급요청을 했다. 사건을 접수한 DC 소방당국은 뒤늦게 앰뷸런스와 소방차를 출동시켰지만 세실씨는 이송된 직후 병원에서 숨졌다.
사망한 세실씨는 은퇴 공무원으로 소방서와 불과 3마일 떨어진 주택에 거주하고 있었다. 세실씨의 죽음에 분개한 딸은 이같은 사실을 당국에 보고하고 사과와 조사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소방당국은 즉시 관련 소방관을 소환해 강도 높은 사실조사를 벌였다고 전했다. 이 조사에는 워싱턴 DC 부시장이 직접 참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은 사고당시 뛰어온 딸과 대면한 소방관은 신입 대원이었고 그같은 사고를 상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일부 혼선이 있었을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하지만 세실씨의 가족들은 긴급환자 대처요령을 익힌 소방관과 다른 대원들이 길건너 쓰러져있는 세실씨에게 달려가 도울 수만 있었다면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분개하고 있다.
에드워드 스미스 워싱턴 DC 소방관 노조 회장은 “모든 DC 소방관들을 대신해 사과의 말을 전한다”면서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박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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