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아그네스 l 한노란 장미꽃 한송이

2013-02-0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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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으막한 언덕 아래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구름 한점 없는 파아란 하늘인데 쌀쌀한 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하네. 까만 코트 걸치신 무척이나 갸날퍼 보이시는 형숙이 어머님 뒷모습에 연세보다 많이 젊어 보이고 깔끔하고 단아하시던 어머니, 멋있고 사랑 많던 아버님과의 40여년전 옛날시간들이 떠오른다. 떠나 보내야 하는 기억들, 정들, 습관들은 얼마나 마음을 할키고서야 아물어 갈 수 있을까?

노란 장미꽃 한송이 관 위에 조심스레이 올려놓으며 뒤로 물러선다. "고통없는 곳에서 편안히 쉬시어요." 햇볕 내리쬐는 땅 위도 이렇게 추운데, 저 땅 밑은 얼마나 축축할까? 아니, 아니 어쩌면 더 푸근하고 따스할지도 모르지.
둥그런 테이블에 친구들 모여 앉아 40여년동안의 기억 속으로 돌아간다. 한동안 못 만났던 얼굴들, 반가워 손을 잡는다.

쓸쓸한 마음으로 소곤소곤 이야기들은 시작되고, 간간히 들려오는 웃음소리 속에 옆에서의 소음에 묻힐까 목소리들이 높아진다. 수북수북 담아져 나오는 음식들 빈 접시되어 나가고, 따뜻한 물 찾는 목소리는 잦아진다. 맛있다 맛있다 짝짝 입맛 다시고, 좋은 사람들 얼굴 마주보고 앉아 훈훈함 마음으로 웃으며, 헤어질 때 힘내라며 등 두들겨 줄 날 얼마나 남았을런지...... 우리 모두 서로 늙어감에 가슴속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자꾸만 두꺼운 코트깃으로 다독 거려본다.


서둘러 일 끝내고 집으로 뛰어 들어오다 앞뜰에 피어나는 노란색 장미 한송이 눈에 띄어 조용히 다가가 보니 정말 예쁘다. 길고 길었던 올 겨울 추위 속에서 견디다 겨우 한 봉오리 피어나 이렇게 예뻐 보이나? 아니, 아니 어쩌면 힘들고 삭막한 이 세상 서로 사랑하다 오라는 꽃편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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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스 한씨는 이화여대 시절 가족이민왔지만 결혼 후 한국에서 생활했다. 그러다 다시 미국으로 왔다. 소규모 사업을 하다가 자녀들의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은퇴했다. 바삐 살던 사람이 조용히 남편만을 바라보며 살자니 조금 심심해져서 부동산업과 carwash business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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