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정화 칼럼] Water / 물

2012-12-28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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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dear brothers and sisters: For a long time, I believed that God is Truth. But today I know that Truth is God.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랜 동안 난 신(神)을 진리(眞理)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난 진리(眞理)가 신(神)임을 압니다.

인도 전통사회에선 남편을 잃은 미망인이 가야 할 길이 오직 세 가지라고 합니다. [Widows have three options.]


첫째, 죽은 남편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겁니다. [Marry your husband’s younger brother.] 둘째, 죽은 남편과 함께 타 죽는 겁니다. [Burn with your dead husband.] 그리고, 세번째 옵션은 자기 부정의 삶을 사는 겁니다. [Or lead a life of self-denial.] 결국, 죽지 못해 힌두 사원에 들어가 자기 부정의 삶을 사는 어리고 젊고 늙은 미망인들의 슬픈 이야기를 수려하게 펼쳐내는 영화 “Water”를 재미있게 그리고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가 수레를 타고 갑니다. 수레 안엔 죽은 듯 보이는 중년 남자가 있고 그 가족들은 아마도 갠지스 강터 베나레스 화장터로 향하는 듯합니다. 해맑기만 한, 이제 갓 아홉 살 정도로 보이는 인도 소녀는 수레 끝에 걸터앉아 뭔가 단맛나는 걸 맛있게 핥으며, 아무 생각도 없이, 죽은 듯 누워 있는 사내의 발을 간지르며 웃기도 합니다. 그렇게 영화는 인도의 시골 길을 가는 수레에 매달린 소녀의 맨발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곧 얼마 후, 소녀의 아버지가 말합니다.
“Child, do you remember getting married?”
아가, 넌 결혼하던 때 기억하지? 뜬금없는 질문에 그저 맑은 눈매로 경청하는 소녀. “Your husband is dead.” 네 남편이 죽었단다. “You are a widow now.” 넌 이제 과부가 되었단다. 그렇게 미망인 선고를 받은 어린 소녀는 팔찌같은 장신구가 깨어지고 머리카락은 모두 잘린 채 강 건너 어느 힌두 사원에 강제로 떠맏겨집니다.

My dear brothers and sisters: For a long time, I believed that God is Truth. But today I know that Truth is God.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랜 동안 난 신(神)을 진리(眞理)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난 진리(眞理)가 신(神)임을 압니다.

아직 10대도 아닌 듯 보이는 어린 미망인 “쭈이야”는 그렇게 미망인 수용소 ‘아쉬람’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제 곧 내일 쯤 부모가 다시 데리러 올 거란 막연한 기대가 모두 허물어져 갈 때 쯤 되어, 쭈이야는 젊고 아름다운 미망인과 친해지게 됩니다. 늙고 고집스런 할머니 미망인, 이제 곧 죽게 될, 그러면서도 노랗고 단 ‘라두’ 한 번 먹어 보는 게 그토록 소원인 할머니, 그리고 수많은 슬픈 눈동자들 사이에 신앙심 깊은 수행자 미망인 한 분도 서서히 눈에 띕니다.

시대 배경은, 간디가 비폭력 독립 항거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인도의 고루한 전통이 조금씩 허물어지면 이른바 근대화 물결의 소식이 쭈이야의 아쉬람 동네까지 간간히 전해지던 무렵. 그리고, 한 젊은 남자 주인공의 등장으로 미망인 재혼 가능성이 그나마 영화적 체험으로 가능해지려던 바로 그런 배경입니다.


간디의 사상을 몸소 믿고 실천하며 젊은 미망인과 결혼하기로 작정했던 청년. 그러나, 브라만 귀족인 아버지가 이미 그 여인을 매춘부로 상대했음을 알고 가슴아픈 기억으로 고향을 등지게 되는 슬픈 사연.

과부가 되는 건 나쁜 업장 때문이다. 과부는 재수 없다. 그런 과부가, 특히 아직 젊고 아리따운 과부가, 귀족인 브라민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건 축복이다. 이런 생각들이 저변에 깔려있는 인도 전통사회. ‘까르마’[업, 業], 전생과 환생 등을 굳게 믿는 힌두 사회.

특히 종교가 신분제도와 결합해 신(神)의 이름으로 불평등이 지속되고 당연히 여겨지는 슬픈 사회.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강가에 물 뜨러 가서도 일반인들의 경멸 대상이 되는 미망인들. 특히 그 중에서 유독 신앙심 깊은 미망인은 왠지 알 수 없는 영혼적 갈등에 시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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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dear brothers and sisters: For a long time, I believed that God is Truth. But today I know that Truth is God.

그러던 어느 날 ….. 쭈이야마저, 그 어리디 어린 소녀까지도, 아쉬람의 생계를 위해 몸 파는 과부들 중 하나가 되어 버린 참담한 현실. 그렇게 찢겨진 아이를 부둥켜 안고 울부짖는 미망인이 듣는 간디의 일갈! 그게 오늘의 지문이요, 그게 바로 제가 본 이 영화 대사 중 압권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랜 동안 난 신(神)을 진리(眞理)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난 진리(眞理)가 신(神)임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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