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서희원 l 크리스마스 소원

2012-12-2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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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안에서 시차로 하루를 빼앗기고 집에 돌아와 시차 적응으로 하루를 더 빼앗기고 나니 금새 연말이 코앞에 와 있습니다. 어느새 캐롤을 흥얼거리고 있는 제자신을 보니 이유없이 들뜨는 크리스마스가 돌아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구 어딘가에서는 종말론도 이겨낸 터라 새로운 세상을 맞게 되는 거라고 축제도 하는가 봅니다. 서울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눈까지 내린다고 하니, 몇 년 만에 찾아오는 최고의 크리스마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흥분되는 분위기 가운데도 마음에 걸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와락센터에서 크리스마스를 맞게 될 쌍용 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이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기대에 부풀어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 속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저를 불편하게 합니다. 올해 가을, 스물세번째 희생자가 나온 후 해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에 대해 글로 접했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극도의 우울증을 겪던 엄마가 몸을 던지는 모습과 어느 날 아침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던 아빠의 모습을 본 아이들이 모여 있는 와락센터의 크리스마스는 어떨지, 마음 한켠이 무거워집니다.

불법 시위자의 가족들로 낙인 찍혀 사회의 가장자리로 몰리게 된 가족들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세워주지 않는 나라, 회사를 살리고 노동자들과 함께 살 수 있었음에도 하루 아침에 해고 노동자가 되어야 했던 아버지들을 “연봉 7,000만원을 받으면서도 불법 파업을 벌이는” 노동자들로 일방적으로 짓밟는 나라에서 사는 아이들도 하얀 눈이 온 크리스마스를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아빠를 짓밟고 때리던 경찰들이 타고 있던 버스에 대한 기억 때문에 아직도 버스를 타지 못하는 아이에게도, 허리춤에 항상 장난감 칼을 꽂고 다녀야만 하는 절박한 여섯 살 아이에게도 눈으로 하얗게 덮인 크리스마스 이브 날, 소망을 빌고 잠이 들면 산타 할아버지가 꼭 이루어 주실 거라고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 어른이 멋진 어른이라고 힘을 실어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 커버린 저의 작은 크리스마스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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