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CUNY 퀸즈칼리지 화학과 교수 &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한국인의 교육열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놀라운 열정의 대상이 자기 자녀를 벗어나지 못한다. 더군다나 이민 1세로서 소수 민족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종과 민족을 초월한 교육적인 공헌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지난 12일 안타깝게 작고하신 고 이종필 박사는 이러한 면에서 불가능의 실현이 가능함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다.
이 박사님은 개인의 참된 행복은 사회에 대한 기여로 완성됨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확신하셨던 분이다. 공론과 분쟁보다는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셨기에 그 믿음은 힘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2005년 백악관에서 수학·과학·기술분야의 최고 멘토들에게 주어지는 대통령상(PAESMEM)을 통해서 20년의 봉사가 드디어 결실을 맺었으며 이후로 뉴욕 낫소 카운티의 마틴 루터 킹 상을 받았고 가장 최근에는 뉴욕주 수학 명예의 전당에도 오르셨다. 작고하시기 전까지 어느 젊은이보다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쉼 없이 일하셨다.
이 박사님이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오시게 된 과정 자체가 후일 그의 성공을 암시하고도 남는다. 장학생으로 미국 대학원에 유학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 당시(1962년) 한국 서민으로서 미국행 비행기표를 산다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서울에 있는 팬암 항공사에 가방 하나 들고 찾아가서 자신의 사정을 진지하게 설명하자 감동한 매니저가 후일 갚겠다는 약속 하나로 표를 발행해주었다. 이 박사님은 이 일을 잊지 않고 그에게 교육의 기회를 열어준 미국과 많은 동료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획기적인 일들을 추진해왔다. 현실에 굴하지 않고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그였기에 중요한 순간에 진정한 후원자들을 찾을 수 있었다.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함을 아셨고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을 늘 보여주신 이 박사님이었다. 이미 25년 전 미국 수학교육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인식하시고 롱아일랜드 수학교육 지도자 모임을 최초로 결성했다. 특유의 추진력으로 수학 기술 교육 지도자 양성기관(Institute of Leadership Training for Teaching Mathematics and Technology)과 롱아일랜드 수학교육 학술회의(Long Island Mathematics Education Conference)를 1987년에 설립했고 지난 25년 동안 이를 거쳐 간 수학 교육자만 해도 만 여명에 이른다. 이종필 박사님의 가장 큰 업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1992년 수학 영재 교육기관(Institute of Creative Problem Solving for Gifted and Talented Students)의 설립이다.
올드웨스트베리 뉴욕주립대학(SUNY)에 있는 이 기관은 롱아일랜드를 대표할 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네 가지 영재교육 기관 중의 하나다. 매년 5~10학년생 800명 정도를 롱아일랜드 각 학군에서 추천받아 필기시험 결과와 다른 요소들을 고려해 70~80명을 선발한다. 유명대학의 영재 프
로그램에서는 실제로 대학원생이 학생들을 지도하는 반면에 이 프로그램에서는 롱아일랜드에서 경험이 풍부하고 유능한 수학교사들이 직접 가르치기 때문에 내용이나 수업 방식 면에서 월등히 앞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박사님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개개인의 역량에 대한 믿음의 소유자로서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주고 귀감이 되신 분이다. 특히 영재 프로그램에 있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역량을 사회를 위해서 써야하고 이것이 미국을 지탱하는 근간임을 늘 강조하셨다. 참된 성공이라 함은 단순히 학업능력 이상의 것이며 자기에게 합당한 대의를 찾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임을 단순 명쾌하게 또한 한결같이 말씀하셨다.
작고하시기까지 이 박사님은 올드웨스트베리 뉴욕주립대학 석좌교수(Distinguished Service Professor)와 롱아일랜드 수학교육 위원장(President of the Long Island Mathematical Education Conference Board)을 역임했다. 많은 것을 성취하셨고 안주할 수 있는 위치였지만 의욕적인 활동에는 끝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박사님은 롱아일랜드한국학교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시는 등 한인 2세의 정체성 교육에도 지속적인 기여를 하셨다. 하지만 이종필 박사님은 동포사회에 자신의 영역을 국한시키지 않고 남다른 혜안과 의지로 미국 교육체제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기여하는 정면 돌파 하셨다.
그분은 단순히 미 교육시스템의 불평자나 수혜자로 남아있지 않고 높은 이상과 현실을 인식하고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삶을
통해 증명하셨다. 너무도 명확하게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아셨지만 독불장군이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의 협조와 도움을 자연스럽게 유도했으며 그를 통해서 지역사회에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교육 시스템을 남기고 가셨다.
이 박사님에 대한 추억과 사진들은 웹사이트(jong-pil-lee.forevermissed.com)에서 열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