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최계영

2010-12-20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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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생의 인연(2)

그동안 1남 2녀를 두고 아이들 돌보는 동안 할머니는 계속 내 곁에서 도와주셨다. 그 후 할아버지가 은퇴하신 후 그들은 고향인 아이다호에 있는 네즈펄즈라는 시골에 꽤 넓은 대지에 아담한 집을 사서 이사하고 우리는 지금 사는 모라가로 옮겼다. 그 후부터 미국명절과 가족 생일 때면 킴브렐 부부는 우리 집에 오셨고 때로는 그분들 양쪽 형제, 친구들도 합세하여 큰 모임을 갖곤 했다. 할머니는 항상 추수감사절과 성탄절 때는 그때마다 다른 후식과 빵을 손수 구우셨다. 명절날 아침이면 반드시 시네몬롤을 만드셔서 핫 초콜릿과 커피를 곁들여 온가족이 즐겼다. 남편은 입버릇처럼 할머니 할아버지는 미국 명절의 상징이라고까지 했다. 지금도 명절 때면 그 분들이 무척 그립다. 나는 막내가 한 살 되던 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일하는 동안 좀 더 학구적으로 공부하여 전문직으로 일하겠다고 결정하고 버클리 대학원을 지망했다고 할머니께 말씀 드렸더니 너무도 기뻐하시면서 적극적으로 돕겠으니 열심히 공부하여 2년 안에 학사학위를 받으라 하셨다. 그때 그분들은 아이다호로 이사한지 몇 년밖에 안되었다. 그 후 두 분은 우리 집에 2년 동안 사시면서 우리 아이들을 돌보아주고 살림을 하시면서 나를 학교에 보내셨다. 2년 후 그분들을 고향으로 가시지 않고 알라메다에 있는 은퇴하신 목사님들을 위한 아파트로 이사하여 가까이서 가족으로 지내다가 워싱턴 주 시애틀 부근에 있는 감리교 실버타운으로 이사했다. 그 후 약 10년 동안도 명절 때면 오셨는데 할아버지가 사망한 후 할머니 기억력이 쇠약해지고 거동도 불편해져 양로원으로 옮기셨다. 그 후부터 우리들이 할머니를 뵈러 일 년에 몇 번씩 시애틀에 가고 있다.

할머니는 전화통화도 안되어 가까이 지내는 친구 분한테 연락하여 할머니 안부를 알게 된 지도 몇 년이 되었다. 그분도 같은 연령대라 통화가 힘들어 가까이 사는 그분 아들을 통해 소식을 듣는다. 할머니는 자기 조부때 대가족이 오하이오 주에서 왜건으로 아이다호까지 대이동을 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대농업 가족이었다. 한해 나는 할머니 고향에 갔다가 바다같이 넓은 밀밭을 모았다. 할아버지 가족은 몇 대로 오리건 포틀랜드에 살았는데 할아버지 부친이 엔지니어로 포틀랜드에 있는 다리공사에 많은 기여를 하셨다. 이렇게 두 가족이 오랜 미국역사와 같이 내려오면서 서부개척때 이동하여 그 멀리 한국에서 온 나를 만났다. 또 전생의 어떤 인연으로 한 가족 관계를 이루며 반세기 가까이 미국에 살다보니 어느덧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고 손주들이 셋이나 되었다. 나도 미국에 우리가족의 개척자로 3대로 뿌리 내렸으니 앞으로 나나 내 자녀들이 또 어떤 전생의 인연을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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