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줄리 김

2010-12-09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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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조는 듯 회색빛 하늘이 보듬고 있는 가로수의 행렬이 겨울잠을 자려는지 한가로운 오후다. 온통 황금빛 융단을 깔아 놓은 듯 낙옆덮인 길 위를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언덕길을 메우고 있다.

잔잔하던 나의 일상에 호수에 누군가 돌팔매질을 한 것 같았다. 아침 운동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장을 보면서 구입한 Vitamin box 포장을 집에 와 열고 보니 빈 것이었다. 새 병으로 바꾸어 주리라 기대하였지만 바보같이 빈 병을 집었다는 황당한 내 설명과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영수증조차 찾을 수가 없다는 나를 무참히 초라하게 만들었다. 병에서 알만 빼가는 손님과 그 빈병을 집어가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오가는 Market Manager에게는 아마도 당연한 처사일지 모르겠지만 억울함을 당한 나는 너무나도 무안하고 생각을 거듭 할수록 치밀어 오는 울분은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막 말로 일진이 사나운 날 이였다고 위로를 해보며 잊으려 해도 머리와 가슴은 천릿길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것 같았다. $20잊어 버린 셈 치자하며 이제는 이 Market은 다시는 안온다고 다짐을 해보지만 나의 마음은 어찌된 일인지 불편하기만 하였다.

작년 겨울 어느 날 신호등 앞에 도와달라는 sign을 들고 떨고 있는 어떤 여인이 하도 마음에 걸려 몇 Block을 다시 돌아와 주머니에 있던 전 재산 $20을 건네주고 흐뭇한 마음으로 온 적이 있다. 내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똑 같은 $20인데 왜 Market에서는 그리도 불편하고 그 여인에게 건넨 것은 그리도 흐뭇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어느 때는 이렇게 Vitamin병에서 알만 빼가는 역할을 하는 사람과 또 그 빈병을 집어가는 사람, 길에서 떨고 있는 사람과 그를 보고 마음이 아픈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리라. 그리고 나의 삶이란, 바로 내가 그 일역을 담당하는 순간순간에 연장임을 보게 된다. 우리의 주변에 언제나 억울함이 있기에 따듯함이 더 귀중하게 느껴지며 우리의 삶에 맛을 더하여 주지 않나 생각해 본다.

오늘이라는 무대에 어떤 역으로 출연하느냐는 어제의 결과와 오늘의 선택일 것이다. 누군가 그토록 원했던 오늘이라면 어떤 역을 할 것인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오늘이 더욱 감사하고 특별한 은혜일 것이다.

햇살을 이고 나르는 낙엽들이 아스팔트 위에 쌓여서 꽃길을 내고 있다. 찬 공기 속을 가르며 내 어깨를 스치며 지는 낙엽들이 “당신에게는 새로운 오늘이 있잖아요”라며 나의 마음을 다독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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