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가야금 산조의 최고 거장이었던 심상건 선생에게 어떤 학생이 산조를 배울 때 일이라고 한다. 한번 배운 것을 밤새 연습해 다음날 그대로 연주하면 그때마다 선생은 산조는 그렇게 타면 안 된다고 했다. 이에 학생이 ‘어제 선생님이 분명히 이렇게 가르치셨다’고 말씀을 드리면 선생은 한사코 자신은 그렇게 가르친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스승의 태도에 어이가 없던 학생. 하루는 녹음기를 몰래 들고 와서 녹음을 하였다. 다음 날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자 보란 듯이 학생은 녹음기를 켜서 확인 시켜드렸다. 그러자, 심상건 선생 왈, “그건 어제 소리지 오늘 소리가 아니야.”
우리의 삶은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들의 하는 일에 따라 하기 급급하게 되어버렸다. 남들이 하니까 남들이 좋다고 하니 나도 따라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진정한 나의 소리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어제해왔던 일을 오늘도 관성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 습관이 계속 되다보니 바로 내가 습관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습관이 바로 내가 되어버렸다. 즉, 주객이 전도되어 습관이 나를 지배해버린 것이다.
어제 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살아 있는 오늘의 소리가 아니다. 오직, 지금 현재 내가 내고 있는 소리에 하나 하나에 혼을 담아 내는 소리만이 살아있는 현재의 소리가 된다. 그리고 진정 그렇게 자신의 소리를 내기에 매 순간 정성을 다한 사람은 자신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의 소리를 내게 된다.
한번은 심 명인에게 무슨 재미로 가야금을 평생토록 타느냐고 물으니 “맺고 푸는”재미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바로 음악에 있어서 긴장과 이완을 자유자재로 하는 재미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음악의 묘미를 가장 잘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맺고 푸는 맛이다. 서양 음악은 거친 소리를 내는 것을 되도록 꺼려한다. 하지만 한국 음악에서는 거친 소리라도 긴장할 때 힘을 모았다가 풀 때 한 번에 강렬한 소리를 내는 것을 좋아한다. 해금의 잉어질이 그렇고, 대금에서의 떠이어, 가야금과 거문교에서의 뜰동이 모두 여기에 해당이 된다.
우리 삶도 꼭 그런 것이 아닐까. 삶의 여정 속에서 “맺고 푸는” 재미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불교에서 마음의 평화를 강조하지만 우리 삶은 항상 평화롭기만 하지는 않다. 우리 삶의 여정에서는 긴장과 이완이 반복된다. 수험생의 긴장도 필요하고, 시험이 끝난 후의 안도감으로 푹 쉬어주는 휴식도 필요하다. 긴장할 때 힘을 한껏 안으로 모아 긴장하고, 풀 때 멋있게 풀어내는 삶의 여유가 진정 우리의 삶을 멋있고, 흥겹고, 신나게 하는 일이 아닌가 한다. 사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것이 바로 긴장과 이완의 연속이 아닌가!
샌프란시스코의 명소인 금문교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 다리 자체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주변의 날씨 때문일 것이다. 금문교는 어느 때 가보아도 색다른 멋으로 다가온다. 안개가 중간 쯤 살짝 걸쳐있는 모양은 꼭 신선이 살 것만 같은 느낌을 주고, 안개에 푹 잠긴 다리는 미지의 미래 속으로 때론 어렴풋한 추억의 한편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러다가 햇살이 맑은 날 그 모습을 다 드러내는 금문교는 꼭 말갛게 세수를 하고 나온 소녀의 얼굴 같으니 전 세계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곳을 찾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변화무쌍한 날씨가 금문교를 더욱 신비롭게 하듯, 우리의 변화무쌍한 삶이 우리를 삶에 찌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멋진 삶의 거장으로 거듭나게 하는 기회가 되길 염원해본다. 그리고 지금 오늘이 바로 생의 처음이지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소중한 순간임을 기억하면서, 한 여름 샌프란시스코의 시원한 안개를 맞으며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