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동을 심은 뜻은 / 김희봉 칼럼(수필가)

2010-08-11 (수) 12:00:00
크게 작게
조카 효주의 손을 잡고 웨딩마치에 맞춰 환한 식장으로 들어선다. 화환을 들고 순백의 긴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학 같이 곱다. 하객들이 모두 일어나 축복의 환호를 보낸다. 동화속 기사처럼 듬직한 신랑이 단 아래서 들러리들을 거느리고 신부를 맞는다. 신랑의 선한 눈매가 꼭 매제를 닮았다.

매제가 병으로 소천한지도 5년이 지났다. ROTC 이년 후배였던 그는 오래 전 여동생과 결혼 때 척 경례부터 올려붙였다. "단결! 조국의 간성(干城)가족에 합류함을 신고합니다" 했는데 맏딸 출가도 못보고 먼저 갔다. 오늘 그가 자기를 닮은 사위를 보았으면 얼마나 흐뭇해했을까?

효주가 대학에 들 무렵, 맏딸 사랑이 지극했던 매제가 느닷없이 한마디했었다. "형님, 오동나무를 심어야겠습니다". 옛 사람들은 딸을 낳으면 텃밭에 오동을 심었다고 한다. 오동나무는 딸이 나이가 찰 때면 큰 나무로 자란다. 딸이 정혼을 하면 아버지는 서둘러 오동을 베어서 시집에 보낼 장롱을 만들었다. 오동은 가볍고 무늬 결도 곱고 벌레도 먹지 않아 악기나 고급가구의 자재로 쓰였다. 골동품을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보호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느 글에 보니, 오동을 심는 부모의 마음에는 이보다 더 깊은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오동은 봉황이 깃드는 상서로운 나무란 것이다. 봉황은 상상 속의 길조지만 수컷은 ‘봉’, 암컷은 ‘황’으로 불렀다.


봉황은 자웅사이가 매우 좋아 부부애를 상징한다. 베개에 봉황을 수놓은 것도 이들의 사랑을 본받으려는 의도다. 그러니 딸의 아버지가 오동을 심는 뜻은 천생연분 ‘봉’을 기다리는 ‘황의 아비’의 마음, 즉 좋은 사위를 맞으려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키운 오동나무는 딸의 혼처가 정해지면 가차없이 잘라낸다. 혼수를 빨리 만들려는 조급함 때문이 아니라 다른 ‘봉’이 내려 앉지 못하도록 내리는 ‘황의 아비’의 결단이란 것이다.

생각하면 효주가 천생연분을 만난 것도 제 아비 덕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 와 쉴 틈 없이 일만 하던 매제가 갑자기 병을 얻었다. 몇 번의 큰 수술을 하며 시도 때도 없이 병원을 드나들었는데 갓 중학생 효주는 늘 아빠 곁에서 통역을 했다. 어리광이나 부릴 나이에 싫은 기색 한번 없이 아빠를 도왔다. 사전을 들춰가며 아빠의 증세를 의료진에게 설명하고, 고통을 참는 아빠의 손을 잡고 시편을 읽어 드렸다.

오랜 세월 투병하는 아빠를 간호하며 커 가는 효주를 누군가 눈여겨보았다. 훗날, 그 분의 소개로 젊은 의사를 만났다. 할머니를 위시해 온 가족, 친척들이 합심해 기도하고 아끼는 가족 사랑에 감동했다며 이세 청년 의사가 청혼을 했다. 아버지 기일 날 산소 앞에서였다고 한다.

신부는 결혼 만찬에서 아빠가 좋아하던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피아노로 친다. 벅찬 마음을 누르고 창 밖 맑은 7월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듬직한 오동나무가 서있었다. 활짝 웃는 매제였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