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천둥 소리에 잠을 설쳤다. 선잠에서 깨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때 아닌 비가 내려 마른 땅을 촉촉히 적셔놓았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리는 첫 비였다.
더구나 어제까지만도 100도를 윗도는 찜통 더위가 계속 되더니 하룻만에 온통 가을의 분위기다.
역시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계절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첫 비, 가을을 알리는 첫 비… 생각만 해도 가슴 속에서 무언가 뭉클함을 느낀다.
사 계절 중에 가을을 제일 좋아하는 까닭도 있지만 옷깃을 세우는 가을이 오면 혼자 가슴앓이를 많이 한다. 순수하고 철없던 처녀시절, 첫사랑 K와 헤어지며 돌아설 때도 가을이 깊었을 때였다.
또한 20년전 둘째 아이를 임신 했을 때 아이한테 문제가 생겨 결국 수술로 아이를 저 하늘로 보내야 했던 가슴 아픈 일도 가을에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3일만에 돌아가신 일도 가을이었다.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았던 가을이지만 그 아픔과 슬픔도 어쩌면 나의 삶을 지탱시켜 주는 근원적인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삶에 그 슬픔의 강은 때때로 폭우가 되어 흘러갈 지라도 더욱 깊게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힘 같은 것일 것이다. 슬픔 끝에는 항상 희망이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안다. 기쁨도 생의 찬란한 부분이지만 슬픔도 생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는 순간 그 슬픔을 이길 용기가 생김을 알기 때문이다.
무성한 나뭇잎이 아름다운 색으로 갈아 입고,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면 하던 일 훌훌 털어버리고 며칠이라도 여행을 하고 싶다. 낯선 여행지에서 깊은 사색으로 나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이 가을에 경허 스님이 쓴 <슬픔>이란 시를 가만히 읊어본다
저리도록 쓸쓸한 가을 바람
빔 깊어가도 잠은 안 와
저 벌레는 어이 그리 슬피 울어
나의 베갯머리를 적시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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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자씨는 30년전 북가주로 도미했으며 현재 산 라몬에서 ‘선인장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문학에 관심이 많은 이선자씨는 현재 한인문학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가주 경영학교 동문회 부회장도 역임한 바 있다. 슬하에 1남 1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