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종혁 칼럼 / 탐 존스

2010-08-0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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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중반에 한국사람 가운데 “딜라일라”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의 노래를 조영남 가수가 우리 말로 불러 더 알려젔다. 당시 군사 혁명과 함께 시작한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혁과 함께 잘 살어 보세 하는 국민의 뜻이 팽배 할때였다. 사회 전체가 월남 전쟁붐 으로 들떠 있을 때 였고 한국 전쟁이후에 가저보는 활발한 거리의 모습이 였다. 그때 서울에서 느닷없이 탐 존스의 음악이 선을 보기 시작 하고 폭팔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러지 않어도 감미롭고 애수적인 팝송에 익숙하던 그때 그의 정열적인 가창법이 이제 막 자립 경제로 뻣어 나가려 고 하는 우리에게 활력도 불어 주지 않었나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았다. 그의 목소리가 하도 특이 해서 얼굴을 보기 전에는 그를 흑인으로 착각도 했다. 그의 음악 장르는 퍽 다양 했다. 때로는 당시에 유행하던 락 앤 롤도 있었지만 심금을 울려 주는 칸추리 웨스턴도 있었다.

지난 30여년 동안 그의 특유한 노래는 이제 나이 70을 맞으며 새 모양으로 변화를 한다고 한다. 그는 지금이 있기 까지 그의 정열적인 열창으로 시나트라 등 여러 대가들 한테 칭찬을 듯기도 했고 그의 음성은 영성이 깃들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마할리아 잭슨등 흑인 가수들이 부른 “praise and blame” 이라는 가스펠을 부르게 되었다고 최근 언론에 보도 된다. 그러지 않어도 그의 음악은 가스펠과 락 앤 롤을 합친 음악이 였다고 했는데 존스의 음성는 가스펠 만 부르기에 적합치 않다는 평이 있어 음악 애호가들 에게는 더 관심을 끌고 있는 가보다. 세월이 흐르며 그의 목소리가 변화 하기 시작 했다. 이제는 정열적인 락 앤 롤을 부르는 목소리에서 구수한 바리톤(smoky baritone)으로 바뀌며 가스펠 부르기에는 적절한 목소리가 되었다고 한다. 앨비스 푸레슬리 생전에 라스베가스 스투디오 에서 같이 가스펠을 부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방향으로 나가라는 엘비스의 권유를 존스는 따르지 않은 적도 있다.

엘리자벳 영국 여왕으로 부터 2006년에 기사 작위를 받은 토마스 존 우다드경( 탐 존스의 본명)은 영국 영토인 웨일스에서 자랄때 흑인 영가를 접하며 그것이 흑인 노예들의 음악인지 모르고 즐겨했다. 그때 까지만 해도 그의 목소리는 가스펠 스타일이 아니라며 그가 그렇게 좋와 하든 음악을 피하곤 했다. 자기는 락 앤 롤과 부기우기가 곁들인 칸추리 웨스턴이 좋다고 하며 그런류의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리고 그의 음악에서 불루스는 빠질수 없는 요소 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린 그린 그래스 오브 홈” 등이 등이 그의 전형적인 음악이 였으며 가창법이 였다고 한다. 이제 나이가 들며 자기가 그렇게 좋와 하던 음악을 하겠다고 한다. 그의 인생에 큰 변혁을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결정 한다. 이제 생각을 하니 1960년 70년대에 그는 흑인아프로 머리를 하고 배꼽까지 들어낸 셔츠 와 다리에 꽉끼는 바지를 입고 열창 하던 모습이 었다. 그러던 그가 얼마전 적은 밴드와 함께 바리톤으로 가스펠을 부를때 관중들은 숨도 멈추듯이 그의 흑인 영가에 매료 되었다.

그는 가스펠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영감 만큼 관중도 느낀것 같다고 공연이 끝나며 이야기 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그의 인기는 대단 하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나이가 비슷한 내또래나 젊은이들을 위한 새 장르를 열고있다. “딜라이라”가 좋와서 흥얼거리며 어려웠지만 우리 모두 희망을 갖고 살던 60년대가 생각이 난다. 탐 존스는 아마 알맞은 때에 우리에게 소개 되었을 것이다. 그의 음악과 함께 우리의 장래를 꿈꾸며 국민에게 주어진 의무를 마치고 나는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강산이 여러번 바뀌었다. 계속에서 새로 태어 나는 그를 보며 나도 다시 태어날 어떤 구실을 만들어야 겠다고 다짐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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