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송정숙 변호사

2010-07-19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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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법 변호사로서 일하면서

왜 가정법 을 선택하였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라는 대답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연이은 이런 질문은 민주정의 사회 성립의 조력자로서의 가정법 변호사의 사명감을 재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가정에서의 민주 정의가 실현됨이 없이는 민주 정의 사회는 구현될 수 없는 것이다.

민주 정의 라는 말을 사용하니 마치 사회 운동가처럼 들릴지 모르나 나는 사회운동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여자는 좋은 신랑 만나서 시집가서 잘 살면 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나 대학 졸업함과 동시에 결혼하여 평범한 회사원 부인으로 살아왔다. 집안 일에 치여 사는 나는 때로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의 자유로움을 부러워 하곤 하였다. 그러다 아이들이 자라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자 법대진학을 생각하게 되었다.

법대에 입학은 하였으나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할 지 몰랐다. 학교에서는 다른 학생들을 따라 지적재산권법 변호사가 되고자 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였다. 그러나 방학 중 인턴쉽은 주로 나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법률구조공단에서 하였다. 그 중 하나인 프로보노 프로젝트에서 가정법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 사건을 접하는 순간부터 왠지 나의 영역인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록 가정법에 대해서는 잘 몰랐으나, 클라이언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체험한 일들 중의 하나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혼이라는 단어는 본업으로 가정법을 선택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가정법률상담소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호주제폐지가 된 직후였다. 그 동안 책에서만 배웠던 가정법이 인권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어왔다는 사실을 그곳에서 체험하였다. 한국에서 여성은 힘없고, 소외되고, 박해받는 자들의 대표였다. 차별과 박해가 사회에서 뿐 아니라 가정내에서도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가정내에서의 차별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이혼법, 상속법 개정을 거듭해왔으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사회내에서의 차별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노력으로 호주제폐지에 이르게 된것이다.

가정문제중 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적은 부분에 불과하다. 가정문제는 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에 걸쳐 여성의 권익보호를 위한 많은 법을 제정해왔다. 재산권리, 가정폭력 관련법 등이 그 예이다. 사회에서처럼 가정에서도 한 개인으로의 자유와 권익이 인정되어야하는 것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미명하에 남편이 모든 것을 좌우하던 시대는 지났다. 부부는 두 독립된 개인의 평등한 동반관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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