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필산책 / 색 바래져 가는 초상화

2010-06-29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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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평 (아동극 작가)

말똥에 굴러도 이성(이 세상)이 좋다 라는 말을 가슴에 담고 사는 지, 사람들은 저마다 갓난 아기 헛발질 하듯, 말똥밭 같은 이 세상에서 그저 오래 살아 보겠다고 바둥 바둥 바둥대는 모습을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끊임 없이 보고 살아가고 있다.

몸에 좋다는 약 한 오큼 입에 털어 넣고, 물 한 모금 마시고는 달구새끼 하늘 쳐다 보듯이 쳐다 보고는 십년은 더 살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 뿐인가 헬스크럽에는 늙은이 젊은이 할것 없이 밀려와, 런닝미싱(Running Machine) 위에서 다름질 선수 마냥 땀방울에 흠벅 젖은 억척 군상들이 오늘도 달리고 또 달리고 있다. 그래서 이런 불경기에도 헬스크럽 만은 불항을 타지 않는 가 보다.

벌써 7월이다. 그렇게 질금 질금 내리던 철 그른 비 마져도 내릴 기미도 없다. 그리고 날마다 이어지던 초겨울 같이 차갑던 날씨도 간데 없고, 따갑게 내리 쪼이는 햇살 아래서 내 글방 뒷 창 가의 부켄빌리어(Bougan Villaea) 넝쿨 꽃이 올해도 어김 없이 빨갛게 피어 나, 계절의 흐름을 알려 준다.


이 해도 절반이 지나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시간을 실은 세월이란 이름의 열차가 자꾸만 달려 가고 만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달려 가는 그 기차를 가로 막을 재간이 없다. 그저 세월을 실은 그 기차에 실려 가야 할 뿐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차창 밖에 획획 지나 가는 전봇대나 산과 들을 내다 보면서 그것들이 멀어져 가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내 고향 통영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 그 전화란 우리 중학 동기생 중 생존해 있던 7명 중에서 또 한 친구가 갔다(死亡)는 스글픈 소식의 전화인 것이다. 또 한 친구 최익환군의 죽음! 이는 어쩌면 천상병 시인이 그의 시 귀천(歸天)에서 적었듯이 이 세상 소풍(逍風)을 끝내고 저 세상으로 먼저 간 것인지도 모른다.

익환이! 그는 1949년, 내가 연세대 의예과에 진학했을 때, 경북대 의예과에 진학한, 나와 같은 의학도의 길을 택했던 친구다. 그리고는 그는 나와는 달리, 그 길을 착실하게 밟아 성공한 개업의(開業醫)로써, 또 보건사회부(保社部)의 보건국장으로 관직에도 몸 담았던 친구였다. 그런데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내가 두 번째 수필집 ‘막은 오르고 막은 내리고’ 를 출판했던 1992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 하고 있다.

나의 수필집 출판을 축하 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통영중학 선배와 내 동기생 1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였다. 그 때, 그는 내 수필집을 받아 들고는 "주평이 넌, 네가 좋아 했던 연극과 문학의 길로 갔던 게 오히려 잘 했던 것 같다." 라고 하면서, 나를 쳐다 보던 그의 눈에 잔잔하게 깔렸던 그 미소가 지금껏 내 기억 속에 생생 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그가 떠나면서 우리 모교인 통영중학과 통고에 1년에 2천만원 씩의 장학금을 내 놓고 간, 그의 보람된 처사(處事)를 전해 들어면서, 나는 내 고향을 위해 그리고 내가 이민 와 사는 이곳의 우리 2세 어린이를 위해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억지로 라도 믿으며 말똥밭 같은 세상에 발 부치고 살아 가고 있는 게 우리들이기는 하지만, 익환군의 죽음에 즈음하여 나도 그가 살다 간 세월만큼 살아 왔지만, 나는 또 한번 내가 살아 온 지난 세월과 앞으로 살아갈 세월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 했던 내가 요즘 따라, 그 일에서 밀리어 나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글 쓰는 일과 연극하는 일, 이 두가지 날개로 훨훨 날라온 나 였지만, 이제는 연극이란 날개 쭉지가 꺾이어 버린 이 마당에서의 나 자신은, 어쩌면 날으지 못 하는 한 마리 늙은 새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하면, 나는 벽 한구석에 걸려있는 색 바래져 가는 초상화(肖像畵) 일는지도 모른다.

늙었다는 것은 희망을 잃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듯이, 내가 이미 늙었다는 사실을 내 자신 깨닫게 됨은, 젊어 한때는 남이 혀를 휘두를 만큼의 패기가 내 몸 속에 휠드엎(Filled up)된 기름 탱크 같이 가득차 있었는데, 이제는 그 용기와 도전정신이 바람 나간 풍선처럼 허물허물 해 졌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나의 일상적인 생활의 한 부분인 원고지 칸을 매우다 말고 습관적으로 지지개를 켜고는 창문 쪽으로 몸을 돌린다. 레이디오에 끼어 넣었던 카 셋트에서 흘러간 멜로디가 흘러 나온다. 그 곡조(曲調)는 어쩌면 지금 내가 빠져 들고 있는 나의 침체(沈滯)된 생각을 반영하는 듯 한 음률이다.

나는 살며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내 여생이 아름답게 물든 저녁 노을 같이 멋지게 맫읍 짓기를 바라면서 ‘잘 지낸 하루가 편안 한 잠을 가져다 주듯이, 잘 활용한 인생은 평온한 죽음을 가져다 준다’ 는 금언(金言)을 되씹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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