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역전 / 이종혁
2010-06-29 (화) 12:00:00
여러가지 형태로 우리는 인생을 살고 있다. 어떤 이들은 틀에 짜인 대로 국민학교를 거처 중고등 학교 그리고 대학을 나와 가정을 이루며 산다. 말단에서 시작 하며 승진도 하고 어느 시기에 은퇴를 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한참 잘 나가다가 뜻한바 있다고 현재있는 직장을 집어 치우고 자기 적성에 맞는 곳을 찾거나 혹은 꿈을 이루기 위하여 사업을 시작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늦은 나이에 학교도 간다. 이럴때마다 뒷걸음을 치기도 하며 새로운 도전을 한다.
인생행로를 바꾼다하여도 주위는 고려해야 된다. 내 친구의 아버지는 나이가 40이 넘어 잘나가던 고급 공무원직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3명의 자녀들은 졸지에 고학생으로 전락하게 되고 어머니는 행상을 하며 아버지를 도왔다. 엄첨난 가족의 희생이었다. 아버지는 목회자가 되었어도 가정을 그렇게 무책임하게 만든 종교가 싫다고 자녀들은 교회를 아주 떠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도 여러가지를 경험했다. 한국 대학에서 전공을 정하지 못하고 고민을 하다가 20대 말에 미국 유학을 왔다. 대학 다니며 우연한 기회에 동무 따라 강남 간다고 회계학을 하게 되고 북가주에서 동포로서는 두번째 공인회계사가 되었다. 나도 여러번 뒷걸음질을 첬다.
이렇게 되기까지 나에게 용기를 준 사건이 있다. 대학을 다니던 60년대 말 서울에서 같은 직장 동료가 미국에 온다하여 샌프란시스코 비행장에 마중을 나갔다. 서울발 노스웨스트가 연착을 해서 무료하게 기다리는데 젊잔게 생긴 미군사병이 내 옆자리에 앉는다. 풍채나 행동거지가 그가 달고 있는 병장 계급장에 걸맞지 않었다. 그냥 한동안 앉아 있다가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한국사람이라고 하니 그도 한국에서 복무하기도 했고 지금은 월남에서 오는 길이라고 한다. 이제 고향에 가면 군에서 제대한다고 한다. 계급을 자꾸 쳐다보는 나에게 빙그레 웃으며 왜 자꾸 쳐다보는지 알겠다고 하며 이야기를 꺼낸다. 본인은 3년전까지만 해도 육군 소령이었다고 한다. ROTC 출신인 그는 17년 군대 생활을 했는데 계급 정년에 걸려 은퇴금도 받지 못하고 퇴직하게 되었다고 한다. 3년만 더 복무하면 은퇴연금을 받게 되는데 영관장교가 포화 상태인 당시에 보직이 없었다고 했다. 계속하여 군당국에 탄원도 내고 수소문을 하니 사병으로 입대하여 3년만 복무하면 20년연금 자격이 주어진다고 했다. 은퇴할때는 소령연금을 받는다하여 40이 넘어 상등병으로 재입대했다고 한다. 그는 의무병을 지원하여 여러 가지 의료기술도 배웠다. 처음에는 사병생활이 이상하더니 나름대로 잘 적응하며 3년을 마쳤다고 한다. 이제 연금도 받게되며 의료계 등 직업을 알선 받았다고 한다.
사병 생활에 아니꼬운 일은 없었느냐고 하니 영화배우 존 웨인같은 웃음을 씩 웃는다. 당시에 나도 군대에서 제대한 지 얼마되지 않아 군조직을 잘 아는데 한국군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하니 또 한번 씩 웃으며 인생을 길게 보며 도약을 위하여 몇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도 괜찮다고 한다. 그는 비행기 탑승 시간이 됐다고 일어서며 악수를 청한다. 실망이 될때 마음이 답답할때 인생을 길게 보며 살라고 하던 그가 생각나며 내게 용기를 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살며 계획되지 않은 만남에서 배우게 되고 좋은 경험을 하게 한다. 지금도 우연한 기회에 그와의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제 고희가 얼마 남지 않은 이때 혹시 거꾸로 갈일이 없는지 주위를 살펴보고 그처럼 씩 웃어도 본다. 어렵고 힘들게 살어온 내 인생인데 구비마다 소중한 만남과 값비싼 경험이 피안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