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안희경 (번역작가)

2010-06-23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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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끼리 냉장고에 넣기, 엘리노어의 조각

엘리노어 앤틴은 30대인 72년부터 뉴욕 MOMA와 휘트니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져온 미국 대표작가다. 그녀의 작품 중 1973년에 발표한, <조각하기 : 전통적인 조각>이란 작품이 있다. 한 달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자신의 알몸 앞, 뒤, 옆을 촬영하며 스스로를 조각하는 다이어트 과정이었다.
샌디에고에서 만난 선생에게 그 작품을 보며 한국에서 유행하던 우스개 소리가 생각났다고 말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인데, 답은 냉장고 문을 열고 코끼리를 넣는 거라 말하자 선생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자기 조각과의 연관을 궁금해 했다. 이야기를 한 토막 더 들려주었다. 수도자와 스승의 대화였다. 찻잔을 가리키며 스승이 물었다. ‘무엇이냐’ 제자가 ‘차’라고 대답하자, 스승은 등짝을 후려쳤다. 또 물었다. 무엇이냐? 잔입니다. 다시 버럭 소리가 울렸고, 제자는 그냥 잔을 들어 마셔 버렸다. 그제서야 제자는 본질에 들어가는 맛을 본 것이다.
이 때 엘리노어 선생이 웃으며 알겠다 하셨다.
우리는 코끼리의 덩치에 질려 냉장고에 접근하는 본질을 잊었다. 냉장고에 접근하는 법은 단순하다. 문을 열면 된다. 마찬가지로 조각을 하기 위해 작가들은 그 대상을 찾아 헤맨다. 조각 하는 주체인 스스로를 잊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각하는 자가 스스로를 대상으로 깎아 낸다는 것은 본질을 건드린 것이다. 조각은 손이 하는 것도 모델이 이뤄놓는 것도 아닌 조각가 마음이 하는 조화이다. 스스로 주체와 대상을 아우르며 작품을 이뤄낸다는 것은 대단히 禪적인 발상이었다. 실제 엘리노어 앤틴은 오랜 시간 참선 해왔다.
우리도 늘 문제에 갇힌다. 진실이 아닌 허상을 풀기 위해 안간힘 쓰다 그 속에서 나오지 못할 때가 많다.
스스로를 조각한 엘리노어의 작품이 73년 휘트니의 조각 작품전에서 거부당했다. 그러나 훗날 100주년 기념전을 맞아 미국 미술 100년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다시 초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처음 공개하는 거라 했다.
조각이 고체덩어리 상에 갇혀 그 틀을 벗기까지 휘트니에서 30년을 보냈다. 내 안의 지혜가 나의 아집에 갇혀 그 보다 긴 세월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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