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느끼는 아리랑

2010-03-22 (월) 12:00:00
크게 작게
최윤정 (컬럼비아대학교 티처스칼리지 사회과교육 박사과정)

2년 전부터 나는 The School at Columbia University, 한국으로 치자면 컬럼비아대학교 부속 초, 중학교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의 다양한 소질개발과 학습능력향상을 위하여 마련된 이 학교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은 다양한 수업과 체계적인 프로그램 관리로 전체 학교 학생의 70%가 이용하고 있다.

나는 일주일에 3번, 일본어, 봉사활동 등 다양한 과목을 가르쳐 왔는데, 그 중 지난학기부터 초등학교 합창 수업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다. 합창수업은 헝가리 출신의 음악전공 교사가 가르치는 이 학교에서 매우 인기가 있는 강좌 중 하나로서 매 학기 15명 내외의 1, 2학년 학생들이 수강한다. 어느 날 합창 선생님은 나에게 학생들에게 한국 민속노래나 동요를 학생들에게 가르쳐 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했다. 나는 아리랑을 소개했다. 내 노래가 끝나자 마자 두 명의 학생들이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한편 이 어린 학생들이 맹랑하면서도 대견하게 느껴졌다.


학생들이 나에게 이 노래에 담긴 사연이나 배경을 설명해 달라고 물어왔다. 나는 너희들이 느끼는 감정처럼 사실 이 노래를 슬픈 노래이며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남녀가 슬퍼하면서 멀리 못가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노래라고 가사를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가끔 ‘한(恨)’이라는 정서가 한국의 특별한 정서라서 외국어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한다. 나도 한의 정서가 무엇인지 한국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명확히 모르겠다. 그러나 아리랑을 듣고 뭔지 모르는 정서를 느끼고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함께 연결지어 표현하는 이 어린 아이들을 보면 한의 정서는 반드시 설명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리랑이 몇 분의 몇 박자인지 모르고 가사도 잘 따라하지 못하는 이 아이들은 이 노래에 대한 지식은 부족할 지 모르지만 감정과 정서는 너무도 풍부하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미국의 교육학자 존 듀이 (Dewey)는 학교교육이 학생들의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경험과 흥미와 밀접하게 연관되지 않는다면 학생들에게 의미있게 전달될 수 없다고 하였다.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또한 텔레비전에서 그토록 아리랑이 아름다운 한국음악이고 독특한 한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외워왔으나 한번도 아리랑을 조용히 감상하고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문화와 정서는 반드시 글로 배운다고 해서 혹은 배경지식을 빠짐없이 외운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학생들이 느끼고 이해하는, 피부로 와닿는 문화와 교육은 무엇일지, 아리랑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미국의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