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내가 여기 있소이다!
2010-03-04 (목) 12:00:00
이정은(취재 1부 부장대우)
서부 캘리포니아로 이민 온지 얼마 되지 않아 겪게 된 1992년의 LA폭동. 당시로썬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피해주민에게 무료로 생필품을 나눠준다는 소식에 한인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는데 이중 상
당수가 최고급 승용차를 몰고 나타난 것이었다. 당시 물품 배급을 도우면서 언뜻 “한인들은 ‘공짜’라면 정녕 체면이나 자존심도 상관치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스쳤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쌀과 비상식량 등 각종 무료 배급품
을 타간 한인의 상당수가 실제로는 폭동 피해자가 아니었단 점이 이를 증명한다.
공짜의 유혹에 눈길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이번 달에는 그야말로 전국의 한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 각자의 몫을 욕심내고 차지해야 할 일이 벌어진다. 바로 연방정부가 10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조사(센서스)를 이달부터 본격 착수했기 때문이다. 설문지는 이달 중순부터 각 가정에 우편 발송될 예정이지만 곳곳에서 눈에 띄는 ‘당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보여 주세요’란 센서스 참여촉구 홍보문구는 각자의 ‘존재감’을 생각해보게 한다.
인구수대로 연방정부가 매년 예산을 나눠주겠다는 일인데 이에 참여하지 않는 국민은 ‘투명인간’이 되는 것과도 같다. 존재는 하되 공식적으론 집계되지 않은 국민들은 연방정부에 ‘나도 여기 있으니 내 몫을 주시오’라고 당당하게 외친 이웃과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에 결국 민폐를 끼칠 뿐이다.
자신의 존재를 적극 알린 이웃들이 받아온 예산을 조사에 불참해 투명인간이 된 이들과 나눠 써야 하는 일은 정해진 식구 수대로 떠 놓은 밥그릇에 누군가 말도 없이 끼어들어 숟가락만 얹어놓고는 나눠 먹겠다는 심보나 다름없다.
인정상 한 두 번은 나눠먹을 수 있다지만 이번에 제대로 바로 잡지 않으면 10년의 세월을 고통 분담해야 한다. 한때 한국에서 유행한 가수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란 노래가사 중에 ‘네가 있어 나는 살 수 있는 거야’란 구절이 있다. 인구조사도 마찬가지다. 내가 제대로 살려면 옆 사람의 참여도 중요하기에 주변인들의 조사 참여 촉구에도 모두가 나서야 한다.
반면 ‘조금 늦는다고 바뀌는 건 없겠지’란 가사 구절은 맞지않다. 이번에 모두가 제대로 참여하지 않으면 10년간 바뀌지도, 바꿀 기회도 없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명언을 남겼다. 인구조사 참여가 당장 우리 손에 열매를 쥐어주지 않는다해도 후손을 위해서라도 한 그루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적극 참여하는 한인이 되길 바란다.
있을 존(存), 있을 재(在)의 ‘존재’를 공식 기록으로 남겨 부디 한인들이 투명인간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