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스타 인터뷰- 오늘 개봉 ‘독주자’ 의 나사니엘 역 제이미 팍스

2009-04-24 (금)
크게 작게

▶ “나사니엘, 정신질환 있지만 미소를 간직”

스타 인터뷰- 오늘 개봉 ‘독주자’ 의 나사니엘 역 제이미 팍스

노숙자 나사니엘이 LA 다운타운서 첼로를 연주하고 있다.

24일 개봉된 ‘독주자’(The Soloist-영화평 ‘영화세상’ 면)에서 정신 분열증으로 줄리아드를 중퇴한 LA의 노숙자 나사니엘 아이어스 역을 맡은 제이미 팍스와의 인터뷰가 지난 3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서 있었다. 그는 연기하듯 제스처를 써가면서 정직하고 감정적인 답을 했는데 클래시컬 피아노를 공부한 사람답게 음악에 관한 얘기를 할 때 즉석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진혼곡)의 한 소절을 노래하기도 했다.


-당신은 매우 긴 대사를 빠르고 유창하게 말하는데 그 걸 어떻게 기억할 수 있었는가.

▲연습의 결과다. 나는 이 역에 집중하기 위해 영화를 찍을 때 집을 나와 아파트를 얻고 혼자서 살면서 그의 대사를 연습했다. 그리고 나는 음악을 공부해 사진기 같은 기억력을 갖고 있다. 나는 클래시컬 음악 연주를 5~6세 때부터 시작했는데 그 때 음표를 한 다발씩 모아 익힌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당신은 클래시컬 음악이 팝보다 훨씬 더 영적이며 우수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연주하는 클래시컬 음악이 수백년 전에 작곡됐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 어느 팝음악도 이것들과 경쟁할 수가 없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이 오래 전 작곡한 음악의 신비를 2009년에 와서도 경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얘기할 만한 일이 아닌가.

-조 라이트 감독은 이 영화가 사람들이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당신은 정신질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어렸을 때 내가 미칠까 봐 무서워했다. 우리 동네에 정신질환자 요양원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구경하곤 했는데 그 때 나는 내겐 저런 일이 안 일어나기를 희망했었다. 내가 대학생이던 18세 때 일이다. 누가 장난으로 내 드링크에 약물을 타 난 정신을 잃고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 뒤로 난 11개월간 정신질환적인 고통을 겪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역을 맡았을 때 난 과거의 악몽과도 같은 경험이 되돌아올까 봐 걱정을 했다.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했을 정도다.

-당신은 부모 대신 조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아버지로서 지금 당신의 딸을 어떻게 인도하고 있는가.

▲내 딸(코린 비숍)은 15세로 키가 5피트7인치요 사이즈 9의 구두를 신는다. 언젠가 우리 둘이 식당에서 나오는 것을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는데 곧 이어 인터넷에 ‘제이미 팍스가 화끈한 젊은 여자와 데이트를 한다’는 글이 나갔다. 딸이 젊은 여자가 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딸이 자신감을 가지고 또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느끼도록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영화는 LA의 다운타운에서 찍었는데 그 동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처음에 LA에 왔을 때(그의 고향은 텍사스) 다운타운과 인접한 6가와 알바라도에서 살았다. 그 후 돈을 벌면서 그 곳으로부터 멀리 떠나 다운타운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조가 나에게 다운타운에 가보자고 했을 때 난 마약과 폭력의 소굴에 왜 가자고 하느냐고 반대했었다. 그러나 막상 그 곳에 가 본 뒤에야 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매우 버젓하며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회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처음에 이곳에서 시작할 때는 먹고 살기가 바빠서 남의 불행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조와 나사니엘과 또 나사니엘의 친구인 스티브 로페스(LA타임스 칼럼니스트) 등을 만나고 나서 난 자신을 연소할 그 무언가를 찾게 됐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인간성의 다른 면을 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난 늘 입양문제에 관여해 왔다. 내가 입양아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고아들을 위한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당신의 자신감은 어디서 오며 또 당신은 어떻게 남자다운 남자가 됐는가.

▲그 것은 내가 어렸을 때 나의 할머니가 내게 피아노를 가르쳐준 데서 형성됐다. 난 13세 때부터 합창단 피아니스트로 일했고 이어 15~64세에 이르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이로 인해 자신감을 키우게 됐다. 남자다운 남자가 되는 비결은 여자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내 할머니의 욕설과 잔소리에 대해 침묵으로 견딘 내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다.

-음악이 당신에게 미친 영향은 어떤 것인가.

▲음악은 모든 것이다. 음악 때문에 난 샌디에고에 있는 인터내셔널 유니버시티에 클래시컬 피아노 장학생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 반에서 미국인은 나 혼자였다. 음악이 내 삶을 이끌어 온 것을 생각하면 경이로울 뿐이다. 지금 내 앨범 ‘인튜이션’은 근 100만장이 팔리면서 탑 10 에 들어 있다.

-피아니스트로서 어떻게 첼로와 바이얼린 연주에 적응했는가.

▲그 것들을 배우면서 겸손해졌다. 벤 홍(LA필 첼리스트)이 지도했는데 현을 잡는다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우리는 적어도 LA필의 단원들이 보기에 괜찮다고 여길 정도가 되기를 원했다. 내가 낸 음은 벤 홍의 그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 게 마음에 걸렸었다.

-가장 좋아하는 클래시컬 음악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다. 이보다 더 당신을 감동시키는 음악은 없을 것이다. 여러분들도 기회가 생기면 들어보기를 권한다.

-나사니엘과 얼마나 친근해질 수 있었나.

▲처음 나는 변장을 하고 나사니엘이 있는 근처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그가 혼자 말하고 화를 내고 또 즐거워하고 연주하는 모습을 비디오카메라에 담아 보면서 연구했다. 후에 그를 직접 만났는데 그는 나를 알아 봤다가 또 기억하지 못하는 등 오락가락 했다. 우리는 디즈니 홀에서 리허설하는 것을 봤는데 그 때 그는 마치 구름을 탄 듯한 인상이었다. 그는 비록 정신질환자일지는 모르나 미소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를 만난 것은 축복이다.

-그는 지금 어떻게 지나고 있는가.

▲개였다가 흐렸다가 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이 그와 스티브의 얘기를 보게 됐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사니엘과 요 요 마의 만남에 대해 얘기해 달라.

▲자세히는 모르나 나사니엘은 요 요 마의 연주에 완전히 넋을 잃고 만다. 그는 마의 음악을 통해 살고 있다고 해고 되겠는데 한 번은 나사니엘이 “오늘은 내가 요 요 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음악과 영화 중 택일하라면 어느 것을 고르겠는가.

▲음악이다. 영화는 감독과 제작자 등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것이지만 음악은 완전히 자기 혼자의 일이기 때문이다.

-나사니엘을 만난 뒤로 지금 그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으며 또 이 영화가 그를 돕기 위해 한 것은 무엇인가.

▲재정적으로는 그를 위한 기금을 조성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신의 상황이나 거처하는 곳에서 떠나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기금을 만든 사람들도 그를 억지로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와 스티브의 관계는 보다 두터워졌다. 나는 그의 삶이 이제부터 영원히 변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가끔 그의 삶을 체크할 것이다. 그는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작곡하거나 들을 때에 당신은 그 것을 색깔과 연결시키는가.

▲나는 음악을 장면이나 내가 들은 얘기와 연결시킨다. 따라서 나는 영화를 만들듯이 작곡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보는 대로 작곡을 하는 것이다.

-실제 인물인 나사니엘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에 따라 당신은 그를 있는 그대로 재창조하려 했는가.

▲있는 그대로의 그를 연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사니엘이 살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 앞에서 나사니엘처럼 횡설수설하자 사람들은 “야, 저 사람 나사니엘이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여동생도 나를 보자 말문을 잃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박흥진 편집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