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쿠바→미국을 수영으로… 60대 그녀는 왜 도전을 멈추지 않았을까

2023-12-29 (금) 라제기 영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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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영화 ‘나이애드’(Nyad)

▶ 아네트 배닝·조디 포스터 열연

쿠바→미국을 수영으로… 60대 그녀는 왜 도전을 멈추지 않았을까

다이애나 나이애드는 60이 넘은 나이에 수영만으로 쿠바 아바나에서 출발해 미국 플로리다로 도착하는 도전에 나선다. [넷플릭스 제공]

50시간 넘게 수영해야 한다. 출발지는 쿠바 아바나, 도착지는 미국 플로리다 해안이다. 거리가 180㎞다. 탈진은 큰 문제가 아니다. 상어가 득실거리고, 독해파리까지 출몰한다. 보호망은 쓸 수 없다. 바다에서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기진맥진해 목적지에 도달해도 물질적 보상은 없다. 최초 성공이라는 명예만 있을 뿐이다. 다이애나 나이애드(아네트 베닝)는 개의치 않는다. 60대 나이에도 그가 버거운 도전을 반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애드는 수영에 재능이 있다.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장거리 수영이 장기였다. 쿠바와 플로리다 사이를 수영으로 이동하는 건 그의 오랜 꿈이다. 28세 때 한 차례 도전하기도 했다. 거친 폭풍우로 122㎞ 수영 후 도전을 접었다. 그에게는 평생에 남은 상처다.

나이애드는 예순 문턱에서 옛 좌절을 떠올린다. 은퇴 생활을 실행할 나이에 위험천만한 계획을 짠다. 보호망 없이 오직 수영으로만 쿠바에서 플로리다로 가려 한다. 파트너 보니 트롤(조디 포스터)이 훈련 코치를 자처한다. 2011년 나이애드는 아바나에서 바닷물에 뛰어든다. 33년 만의 재도전이다.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하나 바다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오랜 훈련을 거치고, 상어 퇴치 장비를 마련한 후 숙련된 항해사를 구했다고 하나 62세에 나선 도전은 실패한다. 30여 년 사이 바다는 온난화 영향을 받았고,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나이애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죽지 않은 게 다행인 도전이었다. 나이애드는 멈추지 않는다. 다시 도전에 나선다. 시도는 반복된다. 주변사람들은 하나 둘 지쳐간다. 나이애드만 의지가 꺾이지 않는다.

나이애드는 왜 멈추지 않는 걸까. 그에게는 어린 시절 아픔이 있다. 호감을 지녔던 남자 코치에게 큰 충격을 받았다. 영화는 사건이 나이애드의 삶에 어떤 여파를 끼쳤는지 세세히 묘사하지는 않는다. 나이애드가 바다에서 고통스러운 역영을 할 때 드문드문 옛 기억이 끼어드는 식으로 암시를 할 뿐이다. 그의 도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나이애드는 어찌 보면 이기적인 사람이다. 실현 가능성이 극히 작은 일을 위해 주변사람을 곤경에 몰아넣는다. 20대에도 못 이뤘던 일을 60대에 해보겠다는 건 무모하게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계속되는 도전(제목이 알려주듯 5번)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나이애드가 체력이 다해 환각 속에서 허우적대듯 팔다리를 움직이는 모습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새삼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며 손가락질하기 바쁠 목표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끝내 다다르는 모습은 언제나 경이롭다.

실화다. 65세 아네트 베닝과 61세 조디 포스터의 열연이 돋보인다. 둘은 햇볕에 그을리고 바닷바람에 말라버린, 까슬한 얼굴만으로도 보는 이의 마음을 훔친다. 특히 베닝의 연기는 눈부시다. 그는 이 영화를 위해 1년가량 수영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 17일 미국 연예매체 할리우드리포터에 따르면 베닝은 하루에 8시간씩 수영한 적도 있다. 베닝은 수영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밝혔다. 영화 속 내용이 실제와 다른 면이 있기도 하다. 배 한 척만이 나이애드의 도전을 도운 것처럼 나오나 여러 척이 동원됐다(영화 막바지에 실제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

<라제기 영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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