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김연아

2009-03-3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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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민교 의사.리치몬드, VA

일주일 내내 먹구름이 끼고 빗방울이 날린다. 아쉽게도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한국야구팀이 우승 자리를 내주던 아침, 맥이 빠져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아니하였는데 봄비가 때마다 머리를 적신다. 그래서 마음을 가라앉힌다. 일본 외야수 이치로의 야비하게 보이는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신사적인 야구를 해야지 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밖에는 큰 나무 작은 나무 할 것 없이 꽃망울을 맺고, 굳은 흙더미 속에 가냘픈 꽃들이 흙을 뚫어 제치고 줄기를 키워서 벌써 하얀 꽃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독수리가 언덕 위 집 굴뚝에 앉아 지키고 있는데 새들은 부지런히 풀밭에 앉아 모이를 줍는다. 시간은 가고 봄은 어김없이 때를 맞춰 오고 있다.
어두운 국가 살림과 경제 잡기의 혼란은 국민의 살림을 쪼들리게 할 뿐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허탈감과 자괴감을 부추긴다. 실제로 직장을 잃고 가정마다 가계부를 줄이고 지출을 없애려고 애를 쓴다. 미국도, 한국도, 세계가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허덕인다. 그래서 무엇인가 기쁨과 희망이 될 것을 찾아야 했다.
세계 프리 피겨 빙상대회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김연아 양은 예전에 보았던 때보다 훨씬 성숙하고 우아해 보였다.
단정한 머리에 검정색 옷은 김 양을 더욱 정숙하고 세련되게 보이게 했다. 소개된 음악 생상의 교향시 ‘죽음의 무도’는 김 양의 자신감을 보이기에 꼭 알맞은 곡 같기도 했다.
음악은 아주 빠르고 김양은 검은 나비처럼 높이 날고 필수적인 회전 시에는 더 높고 빠르고 정확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관중들이 소리를 쳤다. 박수를 쳤다.
그리고 의자를 박차고 모두 일어났다. 짐작컨데 이 숏 프로그램은 그녀의 지난날의 아픔과 소망을 전부 날카로운 칼날 위에 담아 반짝이는 은반 위에 그려놓은 것이 아닐까. 그녀는 경이로운 기록을 내고 있었다.
다음날 김연아 양은 엉덩방아를 찧은 경쟁자 아사도 마로의 뒤를 이어 겸손한듯하지만 신념을 보이는 엷은 웃음을 뛰고 빙판 위에 섰다. 그녀의 모습은 붉은 옷에 싸여 더욱 환하고 크게 보였다.
코르샤코프의 발레곡 ‘샤코르존 세레나데’의 경쾌한 음악에 맞춰 아름다운 선율과 빠르고 확실한 회전을 다시금 선보였다.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 그리고 꿈을 이루려는 애절한 절규가 은반을 가르며 관중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환하게 했다.
끝없이 세레나데가 계속될 것만 같은 환상적인 율동과 발레는 관중들의 환호 속에 김연아 양을 은반의 요정에서 여왕으로 만들고 있었다. 세계적 기록을 세우는 순간이기도 했다.
잠시 경기장은 시상식을 위해 캄캄해졌다. 서서히 수많은 관중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2009년 세계챔피언 김연아”의 이름이 불리어졌다. 미소를 담뿍 담은 김연아 양이 관중에 인사하며 태극기 아래 시상대에 올랐다. 우레 같은 박수가 경기장을 울렸다.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그녀는 금메달을 잡고 있던 손을 오른 가슴에 올렸다. 반짝이는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래도 반짝이는 눈물은 뺨을 타고 하염없이 내렸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희망을 심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희망을 이룰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입안으로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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