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의 위상과 현주소

2009-03-20 (금) 12:00:00
크게 작게

▶ 해롤드 변 버지니아 선관위 부위원장

지난 번 문일룡 훼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의 수퍼바이저 선거 결과를 보고 느낀 점이 많다. 우리 한인 동포들의 정치적 능력이 일보 후퇴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번 선거는 현 수퍼바이저가 의장에 당선됨으로써 생긴 공석을 메꾸기 위한 보궐선거였다.
이런 경우 보통 선거와 달리 투표율이 고작 20% 안팎이니 우리 코리안 아메리칸들이 이 허점을 머리에 두고 총력을 기울여 일제 사격을 퍼부었다면 문일룡 씨는 식은 죽 먹기로 당선이 되어 미국의 수도 워싱턴 지역에서 처음으로 한인 정치인의 탄생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또 우리 한인들은 그동안 쌓아 올린 정치적 잠재력을 과시하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더욱이 브래덕 지구는 이 지역에서 두 번째로 한인들이 많이 사는 선거구였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기회였다.
그러면 이 수퍼바이저는 어떤 자리일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국 서울의 종로구청장 보다도 훨씬 규모가 크며 미국의 웬만한 지방 도시의 시장보다도 큰 행정과 재정, 그리고 입법 권한을 사용할 수 있는 자리라고 하겠다. 훼어팩스 카운티가 전국에서 규모에 있어 7번째로 크다는 것을 알면 가늠이 되고 이해가 쉽다. 따라서 한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부닥치는 문제들, 예를 들어 교회 설립 허가나 건축 허가, 노인 복지 문제, 이민자를 포함한 일반적인 교육정책, 자영 사업이나 심지어 한인회 등 단체에까지도 직간접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리라고 봐야 한다.
나는 과거 18년 동안 공화당에 적을 두고 타의반 자의반 우리 한인사회와 이들 각 기관 사이에 고리를 이어오며 정치인들과 교제하고 교섭해왔다. 그러는 동안 무엇보다도 우리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해왔다. 이런 마당에 모처럼 기회가 무르익어 한인 정치가의 탄생을 눈앞에 보며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라는 당적을 뛰어넘어 우리 한인사회가 똘똘 뭉쳐 문일룡 후보를 당선시켜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왔다.
물론 이 세상에 그리스도 예수 외엔 흠이 없는 사람은 없고 문 후보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 흠이 개인적인 것인가 아니면 선거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결함인가를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한인들이 문 후보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가 어떻든 더욱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이제는 우리도 미국에서 나그네 생활을 청산할 때가 왔다. 우리들이라고 미국의 주인이 못될 리 없다. 아태계 가운데는 일본, 중국계 후손들이 저 멀리 앞서 달리고 있다. 언제까지 손님 생활을 하며 일본, 중국계 후손들이 미국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아는 것이 개인적인 힘이라면 투표장에서 표현되는 것은 우리들 전체의 집약된 힘이다. 우리의 선각자 도산 안창호 선생이 오늘날 살아 계시다면 무엇이라 말씀하실까 상상해 본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